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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 (2)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오늘도 필자는 에베소서 5장 8절-14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두번째로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함을 언급하였다. 그 중에 첫째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하는 명령의 말씀이었다. 둘째가 바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 조차도 부르지 말라고 하는 명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나머지 모두를 언급하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보려고 한다. 본문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시 무시한 사탄을 닮아 가지 아니하고, 갈수록 타락해 가는 이 세상을 닮아 가지도 아니하고, 그 어떤 사람을 닮아 가지고 아니하고, 오직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금도 통치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을 반드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첫째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나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8절-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상태인 “어두움”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 예수를 믿기 이전에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불신앙 상태에 있었던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쁜만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을 추종하던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를 믿게 된 이후에는 이들이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건져냄을 받은 복된 존재들이 된 것이다. 또한 이제는 이들이 “빛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이제 “세상의 빛”으로서,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 가운데에서 드러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바울 사도는 과거에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교인들의 생활과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별함으로써, 그들의 생활이나 행동면에서 불신자들과 분명히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과거에는 어둠 속에서 살았지마는, 이제 예수를 믿기 시작한 이후에는 우리가 주 안에서 빛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야만 마땅한 것이다.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기 위해서는 빛의 열매를 날마다 맺으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빛의 열매는 바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인 것을 확신하시기 바란다. 빛의 열매를 맺고 있다면 먼저는 “모든 착함”이 반드시 열매로 나타나야만 한다. “착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가도쉬네”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관대한 정신으로 온유하며, 도덕적인 성품을 간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의로움”이 열매로 나타나야만 한다. “의로움”이란 “디카이오쉬네”라는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공정하고도 올바른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만 할 것이다. “진실함”이란 말은 “알레데이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말과 행위에 있어서 순수하고, 정직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상 세 가지의 빛의 열매들은 악의 결과로 나타나는 어두움에 반대되는 것들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균형있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참된 자녀됨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이 땅 왕국에서 제사장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왕 같은 제사장의 왕국”을 세우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하나님의 나라 왕국”, 즉 “Kingdom of God”릉 세우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둘째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언제나 시험하여 보아야만 할 것이다.    

본문 10절에 보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보라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서 “시험하여 보라”는 헬라어는 “도키마 존테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금속의 질을 판명하려고 할 때에 쓰이는 단어로서, 실험을 통해서 무엇을 “실증하다”, 또는 “규명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잇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일치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고 하는 명령인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2절에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로마서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아야만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분별해서, 그 뜻대로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일에 대해서 책망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11절)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할 쁜만 아니라.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우움에 참여하지 말아야만 하는 것이다. 바울은 단순히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에 그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을 “책망하라”고 강한 경고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책망하라는 헬라어는 “엘렝케테”라는 말인데, 이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책망의 대상을 사람으로 생각하여서, “납득시키다” 또는 “꾸짖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책망의 대상을 어둠의 죄악으로 생각하여서, “드러내어 폭로하다”, 또는 “고발하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뜻은 모두 다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로서, 어둠에 속한 자들과 그들의 죄악들을 책망을 하고,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어둠에 속한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여서, 자기 자신들을 죄악들로부터 지키기 위함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넷째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야만 하는 줄로 믿는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비추이실 것을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14절).

본문 14절의 인용 구절은 “초대 교회의 세례식 때에 부르는 찬송”이라고 한다. 이 세례식 찬송은 3가지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첫째는, “참자는 자여 깨어서”라는 내용인 것이다. 여기 “잠자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즉 “어두움에 속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깨어서”란 말은 “에게이레”로서, “영적 부활”과 연관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 새롭게 태어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둘째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는 내용인 것이다. 여기 “죽은 자들”은 앞에서 언급한 “잠자는 자”와 병행되고, “일어나라”는 앞에 “깨어서”와 병행되는 것으로서,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그리스도께서 비추이시리라”는 내용인 것이다. 여기 “비추이시리라”는 말은 “에피파우세”라는 말인데, 이 말은 천체, 즉 해와 달이 떠서 빛을 빌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그리스도인이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서, 생명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을 체험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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