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 (1)
- hjpastor
- Jan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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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필자는 오늘 에베소서 5:1-7절을 본문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첫 번째 말씀을 생각하고, 그 다음 주에는 에베소서 5:8-14절을 본문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또 한번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한다. 창세기 1:2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나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5:1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지녀라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인데, 그 사람이 사탄을 닮아 간다거나, 이 세상을 닮아 간다거나, 혹은 사람을 닮아 간다면 되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이란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하나님에 의해서 지음을 받은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본문 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보다 먼저 본문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의 근거가 되는 말씀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들에게 보여 주신 “그 사랑”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인가를 설명하는 말씀이 본문 2절에 나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이며,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하는 성품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사랑의 모범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인 것이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같이”라는 헬라어 “카도스”를 사용하여서 우리가 모방해야 할 기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키도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닮아 지녀야 할 “사랑”이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사랑”에 근거해야 함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객관적인 기준인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 안에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사죄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대속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서, “그 사랑”을 실천해 나가야만이 마땅한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 다음에 보면,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라”고 보충하여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가 “희생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를 위하여”라는 헬라어 “휘페르 헤몬”에서, “휘페르”란 “무엇을 대리하여 행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바로 “대속적인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 나온 “향기로운 제물”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행하신 순종의 삶”을 가리킨다면, 다음에 나오는 “희생 제물”이란 말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온갖 피를 모두 다 흘리시면서, 사망하게 되신 희생적인 죽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마땅한 것을 확신하고, 그와 같이 우리도 실천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그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온대로, 우리가 사랑에 대한 열 다섯가지를 실천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사랑은 온유한 것이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것이며,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이며,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임을 확신하시고, 우리 예수님이 실천하신 그대로 실천하시기 바란다.
둘째로,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우리 중에서 그 이름 조차도 부르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본문 3절에 보면,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 희생적인 사랑의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순결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행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들에 대해서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나오는 “음행”이란 헬라어로 “프로 네이아”라는 말인데, 이 말은 “합법적인 결혼 생활 이외에 벌어지는 모든 성적인 부도덕한 일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온갖 더러운 것”이란 말에서 “더러운 것”이란 헬라어로 “아카 다르시아”라는 말인데, 이 말은 세속적인 존재의 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윤리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매우 추하고, 더러운 모든 행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바로 “탐욕”이다. “탐욕”이란 말은 헬라어로 “플레오 넥시아”라는 말인데, 이것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에 의해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본받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와 같은 악들을 행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악한 일들을 생각지도 말고, 아예 이야기 하지도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을 살아 가려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히 아니함을 기억하시고,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본문 4절에 보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울 사도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우리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도 조심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나오는 “누추함”이란 “아이스 크로테스”란 말인데, 이 말은 “천하고, 속되고, 더러운 모든 말들”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말”이란 “모롤 로기아”라는 말인데, 이것은 “죄악의 성향을 지닌 좋지 못한 모든 말들”로서, 바보같이 중얼거리거나 분별없이 뇌까리는 군소리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희롱의 말”이란 “유트라 펠리아”라는 말인데, 원래로는 “재치있는 농담”이란 좋은 의미였지마는 여기에서는 “외설적인 내용을 포함한 상스러운 모든 농담이나, 독설을 퍼 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이와 같은 더러운 언어 생활을 철저히 배제헤야만 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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