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중 70년의 삶을 돌아보면서 (2)
- hjpastor
- Feb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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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승 목사(새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4) 총신 신대원 3학년 때의 축복
필자가 김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에 1973년 3월에 입학을 하여서 대학 1학년 때만 해도 약 60여명의 신학과 급우들 중에서 성적이 중간 정도 밖에 되지 못하였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필자는 학교 공부하는 일에 게으르지 아니하고 적극 열심을 다하게 되면서, 꾸준하고도 성실하게 공부하는 일에 노력을 하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총신 신대원 졸업반인 3학년 때에는 1,2학기 모두 전 과목이 All A 학점을 받게 되어서, 일년 동안은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받게 되어서 학교에 등록금을 내지 아니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축복을 받았던 일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총신 신대원 3학년 때에는 신약신학 교수이셨던 최낙재 교수님(1937년생이시며, 2010년 5월에 소천하심)의 조교로 발탁이 되어서, 학교로부터 일년 동안 매달 3만원씩 조교 수당을 받았던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총신 신대원 2학년 때에는 신약 신학회 그룹에 들어가서 그룹 활동을 하게 되었었는데, 신약 신학회의 회장은 일년 선배되시는 김춘식 목사님이 맡았었고, 필자가 총무 사역을 맡아서 일하였던 기억이 있다. 총신 대학 1학년 때에 군목 후보생 시험에 합격하게 된 일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총신 신대원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일들이 잘 되었던 점들에 대하여사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5) 총신 신대원 이후에 받은 교육과 취득한 학위들
필자는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할 때(1977년 2월, 7회 졸업생)에 학교에서 B.A 학위를 취득하였었고, 총신 신학대학원을 졸업 할 때(1980년 2월, 73회 졸업생)에는 Eq. M.Div(목회학 석사 학위와 동등한 학위)를 받았었다. 그 후에 필자는 정식 M.Div 학위를 받기 위해서 휴스턴에 있던 HGST(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학교에 편입하여서 1년 동안을 더 공부하여 그 학교를 통해서 정식으로 M.Div 학위를 취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1992년 5월). 그 후에 필자는 건강상 이유로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장성중앙교회(예장 합동측, 서서울 노회 소속)를 11년 만에 사임을 하고서, 1995년도 3월에 미국 휴스턴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와서 HGST 학교의 D.Min(Doctor of Ministry) 과정을 공부하기 위하여 입학하였던 것이다. 그 학교에서 D.Min 프로그램을 6학기 동안 모두 공부를 하여서 이수는 하였으나, 졸업 논문을 쓰지 못하여서 수료로만 마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후에 필자는 박사 과정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휴스턴에 소재하고 있던 남부개혁신학교(SRCS)에 대학원 과정에 편입하여서 1년 동안을 더 공부한 후에 졸업 논문으로 “복합 문화권 속에서 새 믿음장로교회의 부흥 전략”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써서 비로소 2015년 6월에 그 학교로부터 D.Ics(Doctor of Intercultural Studies)학위를 취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보다 2년 전인 2013년 6월에는 그 학교에 이사장으로 계시던 고 이영태 목사님과 초대 총장으로 게시던 고 김성문 목사님의 적극적인 도움과 권유로 그 학교로부터 D.D(Doctor of Divinity, 명예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적이 있었다.
특별히 더욱 감사할 일은 필자가 고 이영태 목사님(78세인 2015년도에 소천하심)과 고 김성문 목사님(93세를 일기로 2026년 1월 20일에 소천하심)을 함께 도와서 남부개혁신학교를 2008년 10월 경에 설립을 할 그 때부터 학교 학감으로 사역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필자가 실천신학 조교수로 학교로부터 임명을 받아서 2024년 12월까지 학교에서 약 16년 동안을 사역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6) 군에서 군목으로 사역하던 3년 동안의 군 생활
필자가 신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나서 예장 합동측 고시부에서 실시한 강도사 고시를 보아서 합격을 하게 되었고, 에장 합동측 함남노회에서 실시한 목사 고시에서 친구 윤두한 강도사와 함께 합격을 하게 된 이후에 필자는 드디어 1980년 2월 25일 날 함남노회에서 함께 목사 안수를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목사 안수를 받자 마자 필자는 국방부 소집 명령을 받고서 군목 후보생 교육을 받기 위해서 전남 광주에 소재한 육군 보병학교로 1980년 4월에 입소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전체 3개월 훈련 생활 중에서 7주 정도를 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마치게 되었을 때에, 보병학교에서는 우리 후보생들에게 광주 시내로 제한을 하면서 처음으로 주일날인 5월 18일날 외출을 허락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주일에 친구 목사님과 함께 아침에 외출 허가를 받아서 광주중앙교회에 가서 주일 에배를 드리고, 그리고 나서 점심 시간이 되어서 식당에 가서 둘이서 점심을 먹고서 밖으로 나왔었는데, 매우 험악하게 대모하는 청년들과 그 대모대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들이 매우 치열하게 서로 싸우면서 대치 상태에 있었다. 그 상황이 너무나도 험악하여서 군복을 입고 나갔던 우리 둘은 위협을 느끼면서 시간을 재촉하여서 부대로 들어 왔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광부사태가 너무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고, 우리 특간 39기 군목 후보생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매일 밤 마다 군화를 신은 채로 군 부대 안에서만 훈련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광주 사태도 목격을 하게 되면서, 4월과 5월과 6월까지 보병학교에서의 3개월 동안의 훈련을 다 마친 후에는성남 행정학교로 이동하여서 7월 한달 동안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그 후에 1980년 8월 1일부로 육군 중위 계급장을 달고서 다른 친구 목사와 함께 양평에 있던 육군 보병 제 20사단에 배치를 받아서 그 친구는 61연대로 배치를 받았었고, 필자는 사단 사령부 포병단에 배치를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포병단에서 4개 대대를 열심히 돌보면서 2년 동안 사역을 하였었고, 그 다음에는 사령부에 있던 단결 군인교회로 배치를 받아서 거기에서 1년 동안 사역을 한 이후에 필자는 1983년 7월 31일부로 군목 생활에서 제대를 하고 사회로 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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