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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중 70년의 삶을 돌아보면서 (1)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구약 성경 중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시편 기자는 인생의 연수를 보통 70으로 보면서, 강건하면 80까지도 살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2023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이 84.5세여서 이제는 우리 한국인들이 세계 수준의 장수 국가에 속한다고 한다. 한국인의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86.6세이고,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80.8세라고 한다. 한국인의 평균 나이가 옛날보다도 훨씬 더 많아진 것을 알 수가 있다. 몇일 전에는 필자가 휴스턴 지역에서 가장 존경하는 어르신 목사님이셨던 김성문 목사님께서 지난 1월 20일날 메모리알 헐만 병원에서 93세 10개월을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셨다. 필자가 평소에 생각할 때에는 김성문 목사님은 매우 체격도 좋으시고 건강하시니까 100세 까지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었는데, 안타깝게도 93세에 하늘나라에 먼저 들어가셨다. 필자가 올 해 생일을 갓 넘겼으니까, 71세의 나이를 먹고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약 20년 동안은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면서 아내와 함께 건강 관리를 하기 위헤서 피트니스 센터에 부지런히 다니면서 앞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필자의 인생은 한국에서의 삶이 40년, 미국에 와서의 삶이 31년째, 이렇게 해서 71살을 먹은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여러 번에 걸쳐서 “나의 인생 중 70년의 삶을 돌아보면서”라는 제목으로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1)     필자의 출생과 초등학교 시절

필자는 전라북도 익산군 황등면에서 부친 이상욱 장로님(80세를 일기로 지난 2008년 8월에 소천하심)과 모친 진희섭 권사님(1931년 생으로, 올해 나이 95세로 전북 김제 노인아파트에서 살고 계심) 사이에 4형제들 중에서 장남으로 1954년 음력 12월에 태어났다. 황등에서 태어난 후에 부모님들이 군산 근방에 있는 옥구군 옥봉면 옥봉 8구로 이사를 하셔서, 그 동네에서 살면서 옥봉 초등학교 1학녀에 입학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차 편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걸어 다녔던 것이다. 2학년 때에는 어머니가 건강이 좋이 못하셔서 대구에 가셔서 성경학교를 공부하신다고 해서 필자를 함열에 있는 외가집에 맡겨 놓으셔서, 2학년 때에는 함열 초등학교에 다녔던 것이다. 3학년 때에는 옥구에서 김제 봉남면으로 이사를 하셔서 봉남 초등학교를 3학년 때에 다녔던 것이다. 초등학교 4,5,6학년 때에는 김제군 황신면 난봉리 묘암 부락으로 이사를 하셔서, 4,5,6학년을 황신 초등학교에서 3년 동안 다녔었다. 이렇게 초등학교를 4군데를 거쳐서 드디어 초등학교를 황산 초등학교에서 졸업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필자가 황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에 개근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이사를 많이 해서 4군데를 거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데에도 학교를 한번도 빠지지 않고서 꾸준히게 다니고 나니까, 6학년 때 졸업을 하면서 개근상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황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김제 읍내에 있는 김제 중학교에 입학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약 4 km 나 되니까 10리가 되는 거리였다. 그 먼 거리를 걸어서 다니려고 하니 1시간 이상을 걸어서 학교에 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필자의 아버지가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자전거 통학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필자를 위해서 새 자전거를 사 주셨다. 그래서 먼저 그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다가 하루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과수원에서 연습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 과수원이 약간 비탈진 길이 있었는데, 그 비탈길 아래에는 둠벙(웅덩이)이 있었던 것이다. 가뭄이 들었을 때에는 160주가 되는 사과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둠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필자가 13살 되었을 때에 과수원에서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다가 그만 실수로 잘못 운전을 하여서 그 둠벙으로 자전거와 함께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필자가 둠벙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으니까 과수원 안에서 일을 하던 일꾼들이 급히 달려 와서 필자를 건져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김제 중학교 3년, 김제 고등학교 3년, 6년 동안을 걸어서가 아닌 자전거 통학으로 학교를 잘 다닐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부모님 덕분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생활은 주로 김제 황산면에 있던 황산교회(예장 합동, 김제 노회 소속)에서 성실하게 잘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황산교회를 핗자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김제 고등학교 3한년까지 다녔으니까, 꼬박 10년 동안을 어린이 주일학교와 중고등부를 다녔던 것이다.

3)     총신대학과 총신 신대원 시절

어린 시절부터 필자의 부모님들께서는 필자가 장남으로 태어 났다고 필자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기도를 하였으니까 “너는 커서 꼭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필자는 으례히 필자가 목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던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이 되어서 김제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필자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시골 교회의 목사님들을 보니까 너무 가난하게 사시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사춘기에 들어서서는 “나는 가난한 목사가 안되고, 부자가 되어서 교회의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싶다”고 하는 포부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 교사를 하든지, 아니면 법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 3년 동안은 필자의 방황기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부모님께는 반항을 하고, 목사가 안되겠다고 하면서 다른 직업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서 교회의 장로가 되겠다고 하니까, 부모님들이 그 때부터 비상이 걸려서 필자를 위해서 더 필사적으로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방황을 하다가 김제 고등학교를 1973년 2월에 졸업하게 되었는데, 마침 2월에 황산교회에서 부흥회기 있었던 것이다. 2월 중순 경에 서울 대성교회(예장 합동측, 수도노회 소속)를 시무하시던 서기행 목사님이 부흥회 강사로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필자도 부모님과 함께 월요일 저녁부터 화,수,목, 금요일에는 새벽 기도회와 낮 성경공부, 저녁 부흥회에 참석을 하고, 토요일 새벽기도회로 부흥회를 마쳤던 것이다. 그러니까 총 14번의 부흥 집회에 참석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첫날 저녁 부흥회 때에 강사 목사님이 출애굽기 3장 1-12절을 본문으로, “네 발의 신을 벗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시는데, 첫 시간부터 필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도전이 되었던 것이다. 그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하시면서, 1) 네 교만의 신을 벗으라. 2) 네 게으름의 신을 벗으라. 3) 네 불순종의 신을 벗으라. 4) 네 불신앙의 신을 벗으라, 5) 네 불충성의 신을 벗으라는 대지들을 가지고 매우 강력하게 말씀을 전하시는데, 그 말씀을 통해서 필자가 일생 일대에 처음으로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큰 은혜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부흥회 때에 첫 날 첫 설교를 마치고 나서 부른 찬송이 바로 새 찬송가 254장이었던 것이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라는 찬송이었다. 이 찬송을 강사 목사님과 온 교우들과 함꼐 부르는데, 그 가사를 생각할 때에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회개의 눈물이 앞을 가리고, 또 눈물이 흐르고 흘러서 도저히 이 찬송을 5절까지 계속해서 다 부를 수 없을 지경에 까지 왔던 것이다.

그 후로 필자는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런 서원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부족한 종이 그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방황하였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며 살아가겠나이다. 부족한 종이 주의 종이 되어서 일평생 동안 주님의 복음만을 증거하며, 주님의 복음만을 위해서 살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나이다”라고 하나님 앞에서 서원기도를 하고서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서 에장 합동측 직영 신학대학인 총신대학에 입학 시험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셔서 총신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합격하게 해 주셨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총신대학에 입학하여 대학 1학년 때에 군목 후보생 시험을 보았는데, 동료들 38명 정도가 지원을 해서 군목 후보생 시험을 보았었는데, 그 중에서 다 떨어지고 7명이 합격하게 되어서, 필자도 거기에 속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필자를 비롯한 7명의 군목 후보생들은 학교 중간에 군대에 가지 아니하고, 대학 4년, 신학원 3년, 총 7년의 학교 과정을 다 마친 후에 해당 노회에서 강도사 고시를 보고, 예장 합동 총회 고시부가 주관하는 목사 고시에 합격하여서 ,1980년 2월 25일에 예장 합동측 함남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서 군대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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