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 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오늘 필자는 빌립보서 2장 1-4절을 중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기록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말씀은 먼저 헬라어인 “에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말은 4개의 조건문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덕목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런 덕목들은 신자들 개인의 윤리적 고상함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갈 때에” 얻게 되는 덕목들인 것이다. 그 첫째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라는 말씀인 것이다. 바울이 교회에 대해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서로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서 서로 권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그리스도 안에 사랑에 무슨 위로나”라는 말씀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리고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랑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서로가 사랑으로 연약한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세번째로는, “그리스도 안에 성령의 무슨 교제나”라는 말씀이다. 성령이란 말은 “프뉴마토스”라는 말인데, 이 말의 앞에 관사가 없다 할찌라도, 이 “프뉴마토스”는 바로 “성령”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의해서 교회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여서 성령 안에서 성도들 간에 “교제”를 나누어야만 할 것이다. 네번째로는, “그리스도 안에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란 말씀이다. 여기 “긍휼”이란 사랑에서 비롯된 “동정”이나, “애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자비”란 긍휼에서 비롯된 외부적인 표현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한 자들이나 어려움에 빠진 자들에게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성도들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 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는 덕목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 사랑의 무슨 위로를 하며,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 성령 안에서 교제를 나누며,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가운데 긍휼을 베풀고, 자비를 베푸는 덕목들을 간직히고 있다면 우리가 어떻에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 한 마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가운데 살아간다면, 우리가 교회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이라고 정한 것이다.
첫째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야만 할 것이다.
본문 2절에 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 “마음을 같이하여”란 말은 헬라어로 “토 아우토 프로네테”라는 말인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생각을 같이하여”라는 의미이지마는, 이것은 단순히 지적인 문제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의 “감정과 태도와 의지까지” 서로 같이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여기 “마음을 같이하여”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진 “뜻을 합하며”와 “한 마음을 품어”라는 말을 반복하여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 사이의 “일치”를 강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의 “일치”를 강조한 이유는 이교도들의 팝박하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성도들의 일치”가 반드시 필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 내부의 분쟁과 불화를 종식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어찌하든지 간에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합하며”, “한 미음을 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랑을 가지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던 것이다. 여기 “같은 사랑을 가지고”에서 “같은 사랑”이란 바로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사랑하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오늘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이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가 되는 역사, 서로 “일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두번째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본문 3절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도들이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소극적인 측면에서, 먼저는 “다툼과 허영”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여기 “허영”의 헬라어 “케노독시안”이란 말은 “케노스” 즉 “내용이 없는” 이란 말과 “독사” 즉 “영광”이란 말의 합성어로서, 바로 “내용이 없는 영광이나 자랑”을 의미하는 말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높이고, 헛된 영광을 추구할 때에 “다툼”이 일어나게 되며, 그래서 교회 안에서 “불화”나 “불일치”를 초래하고야 마는 것이다. 또한 적극적인 측면에서 “교회 안에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겸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으로, 이 겸손을 통해거 사람들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더 높게 여기는 겸손”을 이룰 수가 있다는 말이다. 바울 당시에 이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노예 근성에서 비롯된 “굴욕”과 “비굴함”을 의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겸손의 본”을 손수 보여 주시므로, 이 “겸손”은 기독교 최대의 미덕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겸손을 통해서, 서로 섬김으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야만 할 것이다.
본문 4절에 보면,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여기 본문에 “돌보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코푼테스”라는 말인데, 이 뜻은 “목표나 목적을 바라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목표나 목적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먼저 혹자는 이것을 “이익”이나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해석하여, “자기의 이익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도 함께 생각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잇다. 그 다음에 다른 혹자는 이것을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은사나 자질 등”으로 해석하여서, “자기의 은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은사도 잘 관잘하여서, 그것을 “잘 활용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두 가지의 견해들이 모두 다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볼 수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내에서 자신의 이익과 자기 은사를 살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은사들을 잘 살펴서, 서로를 포용하고, 서로 연합함으로 교회 안에서 서로 “일치”를 이루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대로, 우리 자신의 이익과 은사를 잘 살펴서, 그것을 잘 활용할 뿐만 아니라, 또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이나 은사들도 잘 살펴서 그것을 잘 할용 하게 함으로,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와 “단결”을 반드시 이루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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