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밥 친구 목사님들을 그리워 하면서 (1)

Oct 10
4 min read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 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필자가 미국에 들어 온 때가 1995년 1월의 일이었으니 햇수로는 벌써 32년째 접어들고 있다. 필자가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들어 올 때의 나이가 41살이었는데, 벌써 올 해가 72세를 바라보고 있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빠르다는 말이 실감이 나기도 한다. 휴스턴에 들어와서 필자는 1997년도에 두 번에 걸쳐서 양쪽 고관절에 인공 관절 수술을 받았었고, 1998년 초두에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1999년 7월에 어스틴에 있는 충현장로교회로 부족한 종을 부임케 하셨던 것이다. 그 후에 가정 사정으로 인하여 그 교회를 약 1년 만에 사임을 하고서, 후임자에게 목회하시도록 하고서 2000년 8월에 휴스턴으로 다시 올라와서 교회를 개착하였던 것이 바로 2000년 10월 1일 주일의 일이었다. 필자는 1995년부터 현재인 2026년도까지 필자의 밥 친구였던 선배 목사님들만 5분을 먼저 천국에 보내었던 슬픈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이 분들을 생각하면서 본 칼럼의 제목을 오늘 “밥 친구 목사님들을 그리워 하면서”라고 정하였다. 오늘 이 제목을 가지고 칼럼을 쓰고, 다음 시간에 또 한번 같은 제목으로 칼럼을 쓰려고 한다.  

첫째로는, 부족한 종과 신학대학과 신학교 동기 동창이었던 김종일 목사님을 2002년 2월에 먼저 천국으로 보냈던 일을 기억하면서 그 목사님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 김종일 목사님은 그 때 돌아가실 때의 나이가 53세 밖에 되지 않았었다. 김 목사님은 필자가 총신대학에 다닐 때에, 그리고 총신 신대원에 다닐 때에도 함께 공부하시던 동기 목사님이셨다. 필자보다 나이로는 5살이 위였지마는 공부는 함께 하였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이 태국 선교사로 약 10년 동안을 사역을 하시면서 그 곳에 5개의 교회들을 개척하시고서, 그 당시에 휴스턴에 작은 아버지이신 고 김성만 목사님이 한인장로교회를 목회하고 계셔서 가족들과 함께 휴스턴에 잠시 들어와 계셨엇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병 치례를 하시다가 안타깝게도 간 암으로 2002년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셨던 것이다. 그 때가 필자의 기억으로는 2002년 2월로 기억이 되고 있다. 그 후에도 김 목사님의 아내이신 김영란 선교사님은 지금까지 24년 동안 계속해서 매 해마다 여름이 되면 태국에 단기 선교를 가시면서, 그 때에 개척하였던 5개의 교회들을 돌아보시면서 그 교회에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후원을 하시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또한 일꾼들을 세우거나 가르치기도 하시면서 돌보고 계신다. 교회 건축이나 비전 센터 건축을 위헤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필자도 언젠가 휴스턴 기독교 교회 연합회 주관으로 태국에 단기 선교차 몇 몇 목사님들과 함께 방문하였을 때에 5개 교회들 중 하나였던 크렁봉 교회에 필요한 에어톤들을 준비해서 후원해 드렸던 기억이 있다. 김 목사님은 필자가 2000년 10월에 개척하였던 새 믿음장로교회에 가족들과 함께 신실하게 다니시면서 많은 협력을 해 주셨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김 목사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디면 올 해로 77세였을 것이다. 신학교 동기이시면서 연배였던 김종일 목사님을 지금도 그리워 하면서, 천국에 가게 되면 반갑게 만나게 되리라 확신한다.

둘째로는, 부족한 종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이영태 목사님을 지난 2015년 3월에 먼저 천국으로 보내고 그 분을 지금도 그리워 하고 있다.         

고 이사라 사모님은 이영태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약 11년 동안을 이 땅에서 더 사시다가 지난 8월에 하나님 품으로 들어가셨다. 고 이영태 목사님과 고 김성문 목사님 그리고 필자가 함께 힘을 합하여서 지난 2008년 11월에 휴스턴 지역에 남부개혁신학교를 설립하였었다. 그러니까 이 학교는 설립된지 현재 18년째가 되어 가고 있다. 이영태 목사님은 신학교를 설립하시고 Mangum Road지역에다가 신학교 건물을 구입해 놓으시고, 학교 설립 후 7년 만인 2015년 3월에 심장마비로 감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셨던 것이다. 신학교를 설립하셨던 목적은 휴스턴 지역에 있는 한국 신학생들을 모집해서 그 학생들에게 개혁주의적 보수주의 신학 사상을 가지고, 성경 중심과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과 신학을 올바르게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목회를 진실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영태 목사님은 필자가 박사 학위가 아직 없을 때였던 2013년 6월에 학교에서 필자에게 D.D(Doctor of Divinity) 학위를 수여해 주셨었다. 그 때에 이 목사님께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가졌었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 2015년 3월에 이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셔서 애석하게도 천국으로 먼저 들어가셨던 것이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그 날도 필자는 학교 학감으로서 신학교에서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상황을 잠시 말씀드리기 위해서 그 분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신학교로 가고 있는 도중이었었다. 그런데 통화가 되고 있다가 갑자기 전화가 먹통이 되어서, 필자는 그 전화를 끊고서  이사라 사모님꼐 전화를 드렸었다. 그랬더니  사모님이  이 목사님이 현재 집에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의식이 없으시니, 빨리 911에 전화를 해서 집으로 구급차가 오도록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급히 911에 전화를 해서 이 목사님댁 주소를 알려 드리면서 급히 구급차가 필요하다고 설명을 드렸었다. 그리고 필자는 수업 중에 있던 신학교로 가는 일을 멈추고서 자동차를 이영태 목사님 댁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목사님 댁으로 거의 다 가고 있을 때에 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제 옆으로 지나가기에, 필자도 자동차를 돌려서 그 구급차를 따라갔었던 것이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하니, 둘째 아드님이신 이광선 닥터가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셔서 계속해서 약 1시간 이상을 심폐 소생술을 실시해 보았었지마는 더 이상 호흡이 살아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목사님이 천국으로 들어가셔서 메모리알 옥스에 있는 묘지에 매장되셨던 것이다. 필자는 그 동안에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HGST)에서 3년 간의 D. Min 과정을 모두 수료하였었기에  우리 신학교로 편입을 해서 1년 동안을 다시 공부해서  약 1년 후인 2016년 5월에 우리 신학교에서 졸업 논문을 쓰고서, 우리 신 학교로부터 Doctor of Intercultural Studies(D.Ics, 문화교류학 박사) 학위를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학위를 받으면서도 3년 전에 이영태 목사님이 부종한 종에게 D.D 학위(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해 주셨던 일이 기억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초대 이사장으로 신학교를 신실하게 섬기시면서 필자에게 학감(Academic Dean) 사역을 밭겨 주시고, 필자에게 학위까지 수여해 주시고, 필자를 끔찍하게 아끼시면서 사랑해 주셨던 이 목사님! 저도 이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기쁨으로 이 목사님을 만나게 될 줄로 믿는다.   

셋째로는, 사랑하는 박청수 목사님께서 78세의 나이로 지난 2020년 7월에 소천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그리운 마음을 갖는다.

필자와 함께 밥 친구를 하시던 선배 목사님들은 바로 이영태 목사님과 박청수 목사님과 임관우 목사님과 김성문 목사님이셨다. 선배 목사님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필자가 가장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을 함께 만나서 점심 긱사를 함께 하면서 교제를 나누던 일이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고 박청수 목사님은 휴스턴에 있는 제일 연합감리교회를 매우 열심히 시무하시면서 열정적으로 목회하셨던 분이신데, 그 교회에서 은퇴하시고 버먼트에 있는 교회를 섬기시다가 섬기던 도중에 78세의 나이로 담관암으로 인하여 천국으로 들어가신 것이었다. 그 때가 바로 코로나로 인하여 매우 어려웠던 시기었는데, 바로 2020년 7월 21일에 소천하신 것이었다. 소천하시기 전에 집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계실 때에 몇 번 목사님 댁에 들려서 기도해 드렸던 기억이 있다. 어떤 때는 대 선배되시는 김성문 목사님과 함께 방문해서 간절히 기도해 드렸던 기억도 있다. 박 목사님은 언제나 신사적이시었고, 인자하시고, 늘 평온하신 분이셨다. 더 살면 좋았을 터인데, 좀 일찌기 돌아가셨다. 메모리알 허먼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도 주일이 되니 성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병원에서 억지로 퇴원하셔서 버먼트에 있는 교회까지 가셔서 설교하시고 예배를 인도하시고  돌아 오셨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감동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이렇게 고 김종일 목사님과 고 이영태 목사님과 고 박청수 목사님을 그리워 하면서 본 칼럼을 썼고, 다음에는 고 임관우 목사님과 고 김성문 목사님, 그리고 고 김성심 사모님을 그리워 하면서 본 칼럼을 한번 더 쓰려고 한다. 아멘! 할렐루야!           

 
 
 

Recent Posts

See All

Comments


new Faith Presbyterian Church of Houston, PCA

936-463-8640

pastor@kfpch.org

​

9742 Clay Road,
Houston, TX 77080

Thanks for submitting!

  • White Instagram Icon
  • White YouTube Icon
  • White Facebook Icon

Terms & Conditions

Privacy Policy

Accessibility Statement

©2024 by New Faith Presbyterian Church.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