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오늘은 빌립보서 1장 19-30절을 본문으로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란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도옥중에서 사랑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바로 어떤 것이었는가?
첫째로,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는 것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바울은 본문 20절과 21절에서 뭐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본문의 앞 부분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은 자기 재판의 결과가 어찌하든지 간에,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서 그 동안에 살아 왔고, 장차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몸이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재판의 결과에 관계없이 무슨 일에든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 가겠다고 하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보면,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바울은 재판을 받을 때에 재판의 결과에 상관없이 복음에 대해서 담대히 변증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재판의 결과가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서 살게 되든지, 아니면 사형선고를 받아서 죽게 되든지 간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재판석상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언함으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삶”이나, “그리스도가 삶의 구원”이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라는 의미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삶 자체가 바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언제나 통치를 받으며”, “진실함과 사랑과 소망과 복종과 복음 전파” 등등이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쳐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바로 바울의 삶과 같이 언제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바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날마다 통치를 받으며, 우리의 모든 진실함과 사랑과 소망과 복종 등등이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충만하게 넘쳐나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형태에서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는 뜻인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은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는 축복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존귀케 하던 것을 받해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바울이 다시 너희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는 것임을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문 26절에 보면,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에 보면, “자랑”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헬라어로 “카우케마”라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바로 “기쁨”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이러한 카우케마 즉 “기쁨”은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함께 있음으로 생겨나게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면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도 슬픔이나 걱정이나, 두려움이나 근심 등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 사라지게 하시고, 언제나 주 안에서 기쁨과 소망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세 번째로, 오직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를 기대하며, 소망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본문 27절과 28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바울은 이제 주제를 돌려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활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풀리쿠에스데”라는 말인데,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시민답게 살아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 말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로마 시민이기는 하지마는,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인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라”는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시만답게 사는 기준은 바로 “복음”인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므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일치하며, 그 특권과 책임에 합당하게 살아가야만 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갈 때에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네번째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인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문 29-30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바로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은혜란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깨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고난에 동참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또한 복음을 위하어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임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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