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친구 목사님들을 그리워 하면서 (2)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 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지난 시간에 이어서 다시 한번 “밥 친구 목사님들을 그리워 하면서”라는 제목으로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지난 시간에는 고 김종일 목사님과 고 이영태 목사님, 그리고 고 박청수 목사님을 그리워 하면서 본 칼럼을 썼었다. 오늘은 고 임관우 목사님과 고 김성문 목사님, 그리소 고 김성심 사모님을 그리워 하면서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말씀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할 것이 없이 언젠가는 한 번은 죽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일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선배 목사님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젊은 목사들도, 나이 든 목사들도, 아니 성도들까지도, 아니 이 땅에 살고 있는 그 누구라 할찌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천국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네번째로, 고 임관우 목사님은 매우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분이 었는데, 지난 2023년도에 81세의 나이로 천국에 들어가겼다.
고 임관우 목사님은 복음장로교회를 담임하시다가 은퇴하신 후에 그 분의 아들 임준하 목사에게 담임 목사직을 물려주시고 사시면서 배에 복수가 차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잘 견디시다가 아마 간이 너무 나빠져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신 것이다. 2023년 어느 날 고 임관우 목사님의 장례 예배가 있다고 하는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서, Westheimer Rd와 Eldridge 코너에 있는 Forest Park Westheimer Funeral 에 있는 묘지 앞에 가서 아드님이 인도하시는 장례 예배를 함께 드리고 고 임관우 목사님이 매장되시는 모습을 보고서 돌아 온 적이 있다. 그 때에 필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그 후로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언젠가 임 목사님의 집에 있는 개복숭아 나무와 매실 나무와 그 밖에 다른 나무들을 필자에게 주셔서 그 나무들을 필자의 집 뒷 뜰에 심었었는데 그 나무들아 너무 크게 자란 모습을 보면서, 지금도 임목사님을 생각하곤 한다. 한국에 계실 때에는 실과 교사 일을 하시면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다가 미국으로 건너와서 Midwest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시고 목사가 되어서 복음장로교회를 오랫 동안 목회하시다가 천국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복음장로교회는 원래 그 자리가 어떤 침례교회였었는데, 그 교회가 다른 장소로 이사를 가시면서 새 들어서 지내고 있던 복음장로교회로부터 1달러를 받고서 명의를 이전해 주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국 교회를 거저 한국 교회에 주셔서, 그 교회를 지금도 복음장로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임 목사님은 아드님 하나에 따님이 하나이신데, 아들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역시 Midwest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시고 목사가 되어서 아버님이 섬기시던 교회를 이어서 섬기고 있는 것이다. 2세이시니 영어로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따님은 장 닥터와 결혼을 해서 휴스턴 지역에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으로 듣고 있다. 사모님은 남편과 함께 살던 그 집에서 혼자서 열심히 용기있게 살아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다섯번째로, 고 김성문 목사님은 94세의 나이로 올해인 2026년 1월 20일에 소천하신 것을 알 수가 있다.
고 김성문 목사님은 필자가 1995년 1월에 휴스턴에 처음 들어 왔을 그 때부터 올 해까지 약 31년 동안을 필자의 영적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 주신 분이시다. 김 목사님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맛있는 점심을 사 주셨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슈레프 포트에 있는 교회에서 사임을 하시고, 이곳 휴스턴으로 내려 오셔서 다시 교회를 하윈 지역에 개척하여서 “열린문교회”라는 이름으로 목회를 계속 하셨었다. 그렇게 목회를 하시다가 82세가 되시던 해인 2014년도에 저희 교회 부목사로 섬기시던 이상도 목사님에게 담임 목사직을 물려 주시고 은퇴를 하셨었다. 말하자면 김 목사님은 일평생을 목회만 하시던 분이시다. 한국에서도 광주에서 목회하시고, 서울에서도 목회하시고, 광주에서 사역하실 때에는 경목도 하시면서 활발하고도 신실하게 목회에 전념하셨던 분이시다. 그래서 필자는 휴스턴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 분이 돌아기시는 그 순간까지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서, 그 분의 겸손함과 인자하심과 사랑이 풍성하신 모습들을 닮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였었다.
2025년 11월 어느 날 김 목사님이 누워 계시는 집을 아내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침상에 누워 계시는 김 목사님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드리고, 그리고 나서 김 목사님께 제 아내가 누구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제 아내라고 분명하게 대답해 주시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94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정신 줄을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신 분이시다. 다른 목사들을 절대로 비판한 적이 없으시고, 오히려 다른 목사님들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시고, 권면해 주시는 일에 앞장 서셨었다. 펠자가 목사로서 그렇게 인자하신 목사님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할렐루야!
여섯번째로, 고 김성문 목사님의 사모님께서는 고 김성심 사모님이셨는데, 사모님은 지난 2014년 12월 20일에 80의 나이로 소천하셨었다.
두 분이서 항상 큰 아들이 장로가 되기를 소원하셨었는데,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김 목사님이 살아 계실 때인 지난 2025년 2월 9일날 드디어 큰 아드님이신 깅승철 집사님이 휴스턴 순복음교회에서 장로로 장립을 받으셨었다. 이 일을 보시면서 김 목사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고 좋아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두 분 사이에 4남 1녀의 자녀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다섯 분의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사모님께서는 당시 기침을 너무 많이 하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었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페혈증이 오게 되어서, 그 길로 지난 2014년 12월에 80의 나이에 아깝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 이후에 김 목사님은 혼자서 어렵게 지내시다가 지난 2016년도에 배두련 목사님을 만나서 재혼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배 목사님의 정성된 수발을 받으시면서 김 목사님께서 장수의 복을 누리셔서, 94세까지 사셨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축복인지 모르겠다. 김성심 사모님은 살아 계실 때에 언제나 김 목사님 곁에서 그림자같이 말 없이 함께 따라다니시면서, 목사님의 필요한 것들을 수발들어 주셨었다. 얼마나 모범적이고 얼마나 아름다운 신실하신 사모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에 필자가 밥 친구 목사님으로 함께 교재하시던 고 김종일 목사님과 고 이영태 목사님, 고 박청수 목사님과 고 임관우 목사님, 고 김성문 목사님을 그리워 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 김성심 사모님을 생각하고 그리워 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모든 목사님들과 사모님이 천국으로 가신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확신하면서, 남아 있는 우리의 생애를 살아갈 때에 주님의 모습을 날마다 닮아 가면서,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성실하고도 진실하게, 용기있게 그리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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