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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무릎 꿇고 기도한 내용들

Aug 28
4 min read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 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오늘 필자는 에베소서 3장 14절-19절을 본문으로 “바울이 무릎 꿇고 기도한 내용들”이란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에베소서는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꼐 바울의 “옥중 서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서신서이다 이 옥중 서신들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 제 1차로 투옥되어 있을 때인 주후 60년에서 62년 사이에 기록된 성경들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때는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서 로마에서 첫 번째로 가택 연금 상태나 투옥 생활을 하던 때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목적은 성숙하여 가는 에베소 교회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또한 더욱 더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 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기를 위해서 기도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본문 14절-16절에 보면,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오며,” 바울은 로마 옥중에 있으면서도 무릎을 꿇고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첫 번째 기도 제목이 바로 “그들 속 사람이 강건해 지기를 위해서” 기도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여기 “속 사람”이란 “인간의 영, 마음, 이성과 의지”가 활동하는 “인격”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속 사람”이란 “겉 사람”, 즉 육체에 속하여 부패한 사람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속 사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보면.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속 사람”은 성령을 통해서 능력으로 강건해 진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여기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속 사람 속에 날마다 내주하셔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 “영광”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행위”를 시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 즉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지혜의 무한함과 영원함을 함께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선물의 기준이면서, 규범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능력을 부여하시므로 속 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오늘 바울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능력을 부여하심으로 인하여, 우리 성도님들의 속 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시며, 날마다 강건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바이다.

둘째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바울이 무릎 꿇고서 드린 것을 알 수가 있다.   

본문 17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내주”는 16절에서 언급한 성령의 내주와 병행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속 사람”과 “너희 마음에”와 “성령의 역할”과 “그리스도의 기능”을 세심하게 병행시키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의 아무런 차이점도 경험할 수가 없음을 시사에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게 되며,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을 경험하게 돠는 것이다. 여기 “내주”란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깨서 항상 내 안에 존재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사람들은 자기의 힘이나 자기의 그 어떤 선한 행실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언제나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늘 확신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본문 17절 후반과 18절에 보면,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무릎을 꿇고서 기도한 세 번째 기도 내용인 것이다. 여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행하신 것으로, 바울은 골로새서에서는 “믿음”과 연결짓고 있는 반면에(골로새서 1:23, 2:7), 여기 에베소서에서는 “사랑”과 연결짓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토양으로서,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의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여기 “사랑”이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 주시는 것으로서, 이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음 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네 가지 자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에서 “알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이해가 아니라, 인격적인 지식임을 보다 극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란 이 말씀은 다음 절에서 언급된 “네 가지 차원”을 표현한 말씀으로서, 인간 지식의 한계로는 광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마는 “지식에 넘치는”이란 “지식이란 것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일에 힘써야만 할 것이다.

넷째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도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에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이 말씀은 하나의 관사인 “토”에 의해서 제한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네 가지 차원”의 통일성과 전체성을 나타냄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광대함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감히 측량할 수가 잆는 무한한 풍요함을 가리키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전 구속 사역을 암시해 주고 잇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바울의 중보 기도의 절정인 말씀이 니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는 바로 헬라어 “에이스”로 시작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충만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받았지마는, 또 한편으로는 “충만”으로 채워져 가야만 하는 것으로, 이것은 바울의 종말론을 이해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바울의 종말론은 한 마디로 말하면, “이미”(aleady)와 “아직”(not yet)인 것을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은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이 이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량의 충만함을 바라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충만함”으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온전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 성령의 내주하심과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을 통해서 성취되게 되는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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