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기뻐하고 또 기뻐한 이유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오늘 필자는 빌립보서 1장 12-18절을 중심으로 “바울이 기뻐하고 또 기뻐한 이유”라는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여기 본문 18절에 보면,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례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다. 바울은 로마 옥중에 있으면서도 어떤 방도로 하든지 간에 그리스도가 전파되기만 하면,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 사실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바울이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 이유”라고 정한 것이다.
첫째로는, 형제들 중 다수가 바울의 옥살이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본문 12절 이하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현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기가 당하고 있는 옥중 생활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사실을 그들도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바울의 옥중 생활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또한 그 밖에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었으니, 형제들 다수가 바울의 옥중 생활로 말미암아, 오히려 주 안에서 서로 신뢰하게 됨으로, 그들이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으니, 바울이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 “모든 시위대 안과”라는 말은 “집정관의 시위대 대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시위대 대원들은 죄수들을 감독하기도 하고, 감시하기도 하는 가운데 바울과 접촉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 기회를 통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복음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또한 바울의 복음 증거는 그의 숙소로 찾아온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여져서, 복음이 밖으로까지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방인들 가운데 개종한 사람들과 유대인들 가운데 개종한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바울의 매임 때문에 도리어 이들이 주 안에서 서로 신회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겁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으므로 바울 사도가 옥중에 있으면서도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울 한 사람의 옥살이 때문에 오히려 기독교 신자들이 분발해서 그들까지도 주 안에서 서로 신롸히게 되면서, 오히려 이들이 겁도 없이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전파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렇게 기독교 신앙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이 어렵고도 매우 힘든 시대에 살아가면서, 성도들끼라 서로 미워한다거나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주안에서 신뢰하면서,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더욱 더 담대하게 겁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증거하는 일에 앞장서야만 할 것이다.
둘째로는,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으로 인하여서 바울이 옥중에서 기뻐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본문 15-17절에 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앞에 나온 “어떤 이들”이란 혹자는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이미 유대주의적 경향을 가졌던 로마 교회의 지도자들로 보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이 이미 확보한 지위가 바울의 전도 때문에 흔들리게 되자, 시기와 질투심으로 바울의 전도를 막았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14절에 나타난 “형제 중 다수”와 연결지어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절의 앞부분에 나타난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투옥을 당한 바울을 보고서, 댐대함을 얻은 이들 중에서 바울을 개인적으로 시기하면서, 경쟁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들이라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투기심과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고 하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 “착한 뜻”이란 말은 “유도키안”이란 말인데, “만족, 충족”을 의미하는 말로서, 다른 사람들과 유익한 관계를 가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목적을 바로 깨닫고서, 선한 일꾼들로서, 착한 뜻을 가지고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투기나 분쟁으로가 아니라, 착한 뜻을 가지고, 착하고 충성된 선한 일꾼으로서, 복음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착한 성도거, 충성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어떤 이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 어떤 이들은 바울의 옥중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살 줄로 생각하면서,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을 보면서, 바울은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문 16절과 17절에 보면 그 내용을 알 수가 있다. 여기 나오는 16절의 ‘이들은”이란 바로 앞에서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것이 바울의 어떤 의도나 우연한 계기를 통하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의해서 된 것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던 것이다. 이 말씀은 바로 “바울을 향한 사랑으로” 이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인 “어떤 이들은”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고서,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17절의 말씀은 바로 앞에 15절에 연결된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매임을 당하게 되자, 그 “매임”으로 인해서 바울의 명성이 크게 손상되고, 위축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명성을 회복시키려는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고 하는 말씀인 것이다.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란 하나님의 직분을 맡은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순수하게 헌신적인 동기를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기적인 목적과 야망을 가지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투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롤 전한 이들은 자신의 명성이라는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복음을 증거하든지, 아니면 순수함이 없이 다툼과 투기로 복음을 전파하든지, 어찌하든지 간에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기만 한다면 바울과 같이 기뻐해야만 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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