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
- hjpastor
- Jun 30
- 4 min read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필자는 바울 사도의 이와 같은 위대한 신앙 고백을 바라보게 되면서, 필자도 부족한 것이 많지마는 72세의 매우 부족한 목회자로서, 이와 같은 고백을 하고 싶은 마음이 매우 간절하다. 그러면서 손경민 교수가 지은 “은혜”라는 찬송을 몇번이고 불러보고 싶다. “1)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 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 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2)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 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에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필자는 태어날 때에 1954년 12월에 익산군 황등면에서 부친 이상욱 장로님(2008년 8월에 80세에 돌아기심)과 모친 진희섭 권사님(현재 95세로 김제에 살아계심)과의 사이에서 4형제들 중에 장남으로 태어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때에 태어나서 필자는 41년 동안 한국에서 살다가 41세가 되던 해인 1995년도 3월에 가족과 함께 미국 텍사스 휴스턴 으로 이민을 와서 현재까지 31년째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필자의 인생 72세를 살아가면서 본 칼럼의 제목에 쓰여 있는데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은 마음 이 간절하다. 필자는 오늘부터 모두 5회에 걸쳐서 본 목회 칼럼을 써 나가면서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기에,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하는 신앙 고백을 하고 싶다.
1) 필자로 하여금 믿음의 부모님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필자의 아버지이신 이상욱 장로님과 어머니이신 진희섭 권사님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결혼을 하신 이후에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기도를 가장 먼저 함께 드렸었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희들이 만일 첫 아이가 딸이 아니라 아들을 낳게 된다면, 그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를 드렸었다고 한다. 이렇게 두 분이서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바로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필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소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목회자요, 목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 왔던 것이다. 이렇게 성장하게 되면서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여서 1학년 때에는 옥구군에 있는 옥봉국민학교를 다녔었고, 2학년 때에는 함열국민학교를, 3학년 때에는 봉남국민학교를, 4,5,6학년 때에는 황산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어서, 이렇게 모두 4군데의 국민학교를 옮겨다니면서 황산국민학교를 졸업하였던 것이다. 황산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김제군 황산면 난봉리 묘암부락(과수원)에서 살면서 김제 중학교와 김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었는데, 필자가 중학교 시절까지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해 오다가, 김제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이후에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3년 동안 부모님께 반항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부모님 앞에서 필자가 강력하게 말하기를 “어머니, 이버지! 저는 가난한 목사가 안되고, 부자가 되어서 장로로서 교회를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목사가 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이렇게 부모님께 말을 하게 되자 부모님들은 완전히 비상이 걸리게 되셨던 것이다.
2) 목사가 되도록 필자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인 3년 동안 부모님께 반항을 하면서 목사가 안되고, 장로가 되어서 교회를 섬기겠다고 하니 부모님들이 필자를 위해서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시면서 부르짖어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반항을 하고 있을 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1973년 2월에 필자가 어린 시절 약 10여년 동안 다니고 있던 모 교회인 황산교회에서 “심령 대 부흥회”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만 해도 부흥회는 월요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화요일부터 금요일 까지는 매일 새벽기도회, 낮 성경공부, 저녁 부흥화를 가지다가, 토요일에 새벽기도회를 마지막으로 모두 총 14회에 걸쳐서 부흥회를 하였었는데, 그 때에 부흥강사 목사님이 당시 대성교회를 목회하시던 서기행 목사님(예장 합동측 총회장 역임)이셨던 것이다. 서기행 목사님이 첫째날인 월요일 저녁에 말씀을 증거하시는데, 출애굽기 3장 1절-12절을 본문으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열정적으로 증거하시면서, “네 발에 있는 교만의 신을 벗으라, 네 게으름의 신을 벗으라, 네 이기심의 신을 벗으라, 네 시기심의 신을 벗으라, 내 불순종의 신을 벗으라, 네 발에 있는 불신앙의 신을 벗으라” 등등의 말씀을 전하실 때에, 필자가 그 말씀 앞에 거꾸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 콧물을 많이 흘리면서 하나님 앞에 이런 회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불순종하려는 마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모님의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여서 반드시 목사가 되겠나이다”라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회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설교가 끝나고 나서 새 찬송가 254장을 회중들과 함께 부르는데, 필자는 이 찬송을 부르면서도 하나님 앞에 회개기도를 드리게 되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어서 찬송가의 내용을 볼 수가 없을 정도였었다. “1)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깨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5) 그 피가 맘 속에 큰 증거 됩니다.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이 찬송가를 5절까지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그 동안에 불순종하였던 죄를 회개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고, 콧물이 흘러서 도저히 찬송가 곡을 거의 볼 수가 없을 정도 였던 것이다. 이렇게 첫째날 필자가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를 받고 나서 계속해서 부모님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을 해 오다가 금요일 저녁 부흥회를 마치고 약 20여명의 성도들이 톱밥 난로 가에 둘러 앉아서 철야 기도를 하면서 돌아가면서 간증도 하고,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였었는데, 필자의 차례가 되었을 때에 필자는 그날 참석하신 부모님과 여러 성도님들 앞에서 이런 간증을 하였던 것이다. “저는 그 동안에 목사가 안되려고 부모님께 3년 동안이나 반항하는 생활을 해 왔었습니디. 그러나 이번에 부흥회를 통해서 강사 목사님이 증거하시는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고 나서 하나님 앞에 회개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요, 부모님의 뜻대로 목사가 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후로는 우리 합동측 신학교인 총신대학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고서 꼭 목사가 되어, 평생 동안을 주님의 십자가와 복음만을 증거하면서 살아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간증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간증을 하고나니, 부모님을 비롯해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성도님들이 너무나 기뻐하면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토요일 새벽 기도회를 마치게 되었고, 그 후로 필자는 서울 관악구 사당동에 있는 총신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었고, 총신대학 1학년 때에 국방부가 주관하는 군목 후보생 시험을 보아서 합격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필자는 총신대학 4학년 동안과 총신대 신대원 3년 동안, 총 7년 동안을 국방부에서 군대로 불러가지 아니하고, 공부를 계속할 수가 있었고, 드디어 신학교를 모두 졸업한 후에 강도사 고시와 목사 고시에 합격을 하고 나서, 에장 합동측 함남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었는데, 그 날이 바로 1980년 2월 25일이었던 것이다. 그 후에 필자는 4월과 5월과 6월, 3개월 동안 광주에 소재해 있던 육군 보병학교에서 군목 후보생으로서 훈련을 받았었고(당시 훈련 기간 동안 광주 5.18 사건도 일어났었음) , 7월 한달 동안은 성남에 있던 행정학교에서 훈련을 다 마친 후에 1980년 8월 1일부로 국방부 주관으로 하는 임관식에서 중위 계급장을 달고서 양평에 소재해 있던 당시 육군 제20사단 포병부대에 군목으로 파송되었던 것이다.
3) 군목으로서 육군 제20사단에서 3년 동안 사역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멘, 할렐루야!(다음 주에 계속)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