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합시다 (2)
- hjpastor
-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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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에베소서 5:15-21절을 본문으로,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합시다”(1)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3가지로 상고하였던 적이 있다. 첫째로는,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세월을 아껴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면서,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둘째로는,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라는 말씀을 드렸다. 셋째로는,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술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씀을 드렸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연속적으로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째로,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면서, 우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본문 19절에 나와 있는 말씀을 보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하여 얻게 된 그 큰 기쁨으로 찬양과 찬미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시사하는 말씀인 것이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찬양의 종류를 3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먼저는 “시”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말은 헬라어로 “프살모이스”라는 말인데, 이 말은 구약 성경의 “시편” 뿐만 아니라, 시편이 가지고 있던 신앙 정신과 그 형태를 간직한 일반적인 “찬양 노래들”까지를 모두 가리키는 것이다. 예룰 들어서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노래하였던 시였던 누가복음 1:45-55절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가 있다. 거기에 보면, 누가복음 1:46-48절에 보면,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는 내용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누가복음 1:52-55절에도 보면,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라는 내용도 “시”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다음에는 “찬송”이 있다. 구 성경에서는 “찬미”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은 헬라어로 “휭노이스”라고 하는 말인데. 이것은 신이나 영웅을 찬양할 때에 불렀던 노래를 의미하였으나, 초대 교회에서는 당시에 초대 교회 내에서 작성되기 시작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영광송”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주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송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새 찬송가 9장인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온 땅에 충만한 존귀하신 하나님, 생명과 빛으로 지혜와 권능으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의 하나님, 우리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와 같은 영광송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신령한 노래들”이 있는 것이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다이스 푸뉴마티 카이스”라는 말인데, 이 말은 “세속적인 노래”와는 달리,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불리어진 찬송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날마다 찬송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날마다 찬양하고, 또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둘째로,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하는 것이다.
본문 20절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 “항상”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찌라도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의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처해 있는 그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깨닫고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한 것이다. “감사”는 이 세상의 모든생명과 삶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인식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지혜 있는 자와 같이 행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셋째로,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본문 2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바울 사도를 통해서 명령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구절이 연결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는 이 구절이 앞에서 언급한 성령 충만한 생활에 연결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여기 “복종하라”는 말의 헬라어 “휘포탓소 메노이”는 분사로서, 19절과 20절에서 언급한 네 개의 분사들과 일맥 상통하기 때문인 것이다. 두번째로는 본문의 말씀이 22절부터 시작되는 다음 단락과 연결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왜냐하면 “권고”라는 문맥에서 분사는 독립적인 동사나 명령형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 두가지의 견해들은 모두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문법적으로는 20절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고, 내용상으로는 다음 단락에 연결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 “복종하라”는 말의 헬라어 “휘포탓소 메노아”라는 말은 바로 고대의 군사 용어로서, 본래 “……아래 정렬하다”라는 의미이지마는, 여기서는 “현재 영위하고 있는 위치로 인해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을 따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존경하고, 서로를 섬겨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상호간의 복종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 “경외”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보”라는 말은 존경보다는 더 강한 의미로, “경의”라는 뜻이거나, “의무감”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강요나 위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복종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이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언제나 넘쳐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복종인 것이다. 왜냐하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님께 복종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남편들 역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남편이 주님꼐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처럼 자기 아내를 위한 “희생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머리의 역할은 “다스림”을 의미하지마는, 그 “다스림”은 폭군과 같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과 “희생”을 통한 “다스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머리의 역할이 얼마나 힘이 든 일이겠는가? 그러나 우리를 위한 주님의 희생적인 삶이 기쁨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에, 남편도 자기 아내를 위하여 “희생”하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머리가 되는 남편에게 순종해야만 할 것이다. 남편은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 복종하면서, 자기 아내를 위하여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남편과 아내, 모두를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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