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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2년 간의 교역자 생활을 돌아보면서 (1)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필자가 총신대학 2학년 때였던 1974년 1월부터 2025년 8월 1일까지 교역자 생활을 해 오고 있는데, 그 연수를 계산해 보면 정확하게 만 51년 8개월째가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칼럼의 제목을 “지난 52년 간의 교역자 생활을 돌아보면서”라고 정하였다. 부족한 종의 본 칼럼을 통하여 하나님께는영광이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는 귀한 도전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1)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을 때에(1973년 2월)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인하여 의례히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었다. 그런데 김제 고등학교에 입학하여서 졸업할 때까지 약 3년 동안은 필자가 방황하면서 목사가 안되고 장로가 되어서 교회를 섬기겠다고 부모님께 반항하면서 지내왔기에 부모님들께서 가슴 아파하시면서 저의 앞날을 위해서 많은 기도로 후원해 주고 계셨었다. 그러다가 1973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월 중에(아마도 1973년 2월 19일부터 24일까지) 시골교회인 황산교회(예장 합동측, 김제노회 소속)에서 심령 대 부흥회가 있었다. 그 때에 부흥강사는 서기행 목사님(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수도노회 소속, 대성교회 담임목사 역임, 현재 대성교회 원로목사, 예장 합동측 총회장 역임)이셨고 부흥회 기간은 월요일 저녁 시간부터 토요일 새벽기도회까지였는데,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새벽기도회와 낮 성경공부 시간과 저녁 부흥회를 가지면서 매일 3번 모였었기에 전체 무려 14번에 걸쳐서 집회를 가졌었다. 그 때에 필자는 부모님과 함께 집회에 첫시간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모두 14번을 다 참석하였었다. 그런데 부흥강사 목사님이 첫날 저녁 부흥회 때에 출애굽기 3장 1절-12절까지를 본문으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말씀 앞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은혜를 받게 되었고 부족한 종이 꺼꾸러지고 말았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는 제목으로 말씀하시면서 “네 발에서 교만의 신을 벗으라, 네 발에서 나태함의 신을 벗으라, 네 발에서 불신의 신을 벗으라. 네 발에서 악한 생각의 신을 벗으라”는 말씀으로 증거하시는데, 그 말씀 앞에서 필자가 꺼꾸러지고 말았다. 설교 말씀을 다 전하신 후에는 새찬송가 254장(통합 186장)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라는 찬송릏 부르는데, 필자가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아서 였는지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저히 찬송을 부를 수 없을 정도였었다. 그 후에 금요일 저녁에 저녁 부흥회를 마친 후에 약 15분 정도의 성도님들이 난로 가에 둘러 앉아서 철야기도를 하면서 돌아가며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그 때에 필자도 부모님과 함께 그 철야기도에 참석하여서 이런 간증을 하였었다. “저는 이번에 하나님의 크신 은헤를 받고서, 부모님이 기도해 오신 대로 목사가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어서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복음을 증거하며,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천국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간증하였다. 이렇게 간증을 하니 거기에 함께 모여 있던 성도님들이 모두 기뻐서 손뼉을 쳐 주시고, 무엇보다도 저의 부모님이신 이상욱 장로님(2008년 8월에 소천하심)과 진희섭 권사님(현재 94세로 김제 노인아파트에서 살고 계심)이 너무나도 많이 기뻐하셨다. 그 다음날 토요 새벽기도회를 마치시고서 강사 목사님이 전주에 가셔서 고속버스를 타시고 서울로 올라가시는데, 필자도 그 고속버스에 몸을 실고서 서울로 올라가서 외삼촌 댁에 잠시 머물면서 총신대학 입학 시험을 보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이 되어서, 1973년 3월에 총신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1974년 1월,  2학년 때에는 필자가 다니던 서기행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대성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부족한 종을 임명해 주시므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52년째 교역자로서, 목사로 달려오고 있음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     6년 동안의 교육 전도사 생활

그러니까 필자가 총신대학 2학년 때부터 총신 신대원 3학년을 졸업할 때까지 약 6년 동안 대성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서 유치부를 담당하거나 유초등부를 담당하거나, 중고등부를 담당하면서 한 주일도 빠지지 아니하고 필자가 살던 봉천동에서 이태원동에 있던 대성교회까지 버스를 두번 갈아 타면서 교회를 성실하게 섬겼었다. 그 6년 동안,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총신대학(4년)과 총신대 신대원(3년)에 다니던 7년 동안 꾸준하고도 성실하게 대성교회를 섬겼었다. 그 때에 같은 학년에서 함께 공부하던 정용환 목사(현재 목포 시온성 교회 원로 목사)도 역시 7년을 필자와 함께 그 교회를 섬겼었다. 그 때에 필자는 당회장이신 서기행 목사님을 통해서 목회 철학도 배우고, 설교하는 방법도 배우고, 교역자들 간에 교제하는 방법, 선배 목사님을 섬기는 방법, 교우들을 심방하며 교우들과 교제하는 방법, 기도하는 방법, 성가대에서 봉사하면서 찬양하는 방법, 철야 기도하는 방법 등등을 배우면서 19살 때부터 25살까지 배우고, 26살의 나이였던 1980년 2월 25일에 함남노회(예장 합동측)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매우 어린 시절부터 25살의 나이 때까지 대성교회에서 배웠던 목회 생활 전체가 필자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놀라운 경험들을 하게 되었던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며, 지금도 생존하여 계시는 서기행 목사님께도 감사드린다. 시골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에 그 때에 강사 목사님이 증거하시는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소명도 받아서 신학대학에도 진학을 하고, 그 후로 강사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를 7년 동안 변함없이 꾸준히 섬기도록 역사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3)     목사 안수 후 3년 동안의 군목 생활

필자가 1980년 2월 25일에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 그 해 4월부터 6월까지 약 3개월 동안 군목 후보생 훈련을 광주 보병학교에서 받았었다. 그 때에 필자는 특간 37기로서 군목으로 사역할 여러 목사들과 함께 훈련을 받으면서, 5월 18일, 즉 1980년 5.18도 맞이하였던 것이다. 1980년 5월 18일은 주일이었는데, 저희가 4월 1일부터 광주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아 오면서 7주 동안은 영내에 있는 군인교회로 주일 예배를 참석해 오다가, 5월 18일 주일에는 처음으로 광주 시내로 제한을 하면서 하루 외출을 받은 날이었었다. 그날 친구 목사 한 분과 함께 필자는 광주중앙장로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오후 시간에 어느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서 나왔는데, 그 시간에 대모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광주에 사는  대학생들이 경찰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면서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고 있었고, 경잘들은 방패들을 들고서 대학생들을 해산시키고 진압하기 위해서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친구 목사와 필자는 잔뜩 겁이 나서 원래대로라면 그날 오후 5시까지 부대로 복귀하면 되었었는데, 그날 우리는 오후 2시 경에 부대로 미리 복귀하였던 것이다. 그날부터 시작된 5.18 광주 사태가 나게 되므로 인하여 우리 훈련병들은 그 날 이후로 외부에 나가서 수업을 하지 못하고, 부대 내에서만 훈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4월부터 6월까지는 광주 보병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었고, 7월 한달 동안은 성남에 있는 행정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이후에, 우리는 그해 8월 1일부로 중위 계급장을 달게 되었고, 필자는 그날 양평에 있던 육군 보병 제20사단으로 배치를 받게 되어서, 2년 동안은 포병연대에서 군목 생활을 하면서 군인들에게 정신 교육을 시키며, 주일 예배를 인도하되, 69,70,91대대애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찾아가서 주일 예배를 인도하였었다. 이렇게 포병연대 본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2년 동안을 근무하였었고, 나머지 1년 동안은 20사단 사령부에 배속이 되어서 그 곳에 있는 단결군인교회에서 성실하게 주일 에배를 인도하면서 군인들에게 정신 교육을 시켰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1982년 10월 30일날 필자가 단결군인교회를 섬기면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식을 갖게 되었었는데, 그 때에 결혼식 장소가 바로 필자가 교육전도사로 섬겼던 대성교회였었고, 주례자가 바로 서기행 목사님이셨다. 할렐루야! 아멘!

(다음 주에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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