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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삶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오늘 필자는 에베소서 4장 1절-6절까지의 본문을 가지고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삶”이란 제목으로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본문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로 시작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 초두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에베소서 3:1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의 “주 안에서 갇힌 나”는 바울이 복음과 그리스도에 대해 충성하다가 감옥에 갇혔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베소서도 다른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에베소서의 기록 연대는 서기 62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저자인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에 기록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이후에 바울이 권면하고자 하는 내용들의 진실성과 권위를 암시한다고 볼 수가 있다. 그 다음에는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속에서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란 바로 “부르심”인데, 이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을 통한 새 생명에의 초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필자는 이 본문을 가지고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만 할 것인가? 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첫째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먼저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무장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2절 초두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라고 되어 있다. 영어 성경인 NIV에 보면, “Be completely humble and gentle”이리고 번역하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먼저 나오는 “겸손”이란 말은 “자신의 부족함과 무가치함을 깨닫고서, 자기 자신보다도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2:3절에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고”리고 권면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당시에 겸손은 “비열한 마음과 노예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미덕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친히 낮아지시는 본을 통해서 겸손의 미덕을 보여 주셨으므로 “겸손한 마음”은 바로 우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모든 미덕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서, 그 부르심의 기준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무장해야만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온유”로 부장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이해심이 깊음”을 의미하는 말로서, “정중함” 즉 “Gentleness”로 번역하기도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온유의 미덕은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면서, 또한 성령의 열매로서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된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는, 온유란 바로 “중용”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성품이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할 때에 사용되는 말인 것이다. 둘째로는, 온유란 자신의 생각과 마음, 또는 본능적인 욕구 등을 스스로 자제하는 덕성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야고보서 3:3절에 보면,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온유”란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스스로 제지하고, 스스로 억제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유라는 말은 온화하고, 따뜻하며, 부드러운 성격과 태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온유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시는 줄로 믿는다. 우리 하나님은 온유한 성도들을 사용하시며, 온유한 목회자들을 들어서 사용하시는 줄로 믿는다.

    둘째로, 그 다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오래 참음으로 무장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2절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사로 용납하고”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 “오래 참음”이란 말은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면서,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내야할 성령의 열매”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오래 참음”이란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복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복수하지 않는 마음”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로마서 9:22절에 있는 말씀대로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베드로후서 3:15절에도 보면,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라는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오래 참으시는 것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인 것이다.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니느웨 성에 심판을 선포하시면서도 40일 간의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하는 증거인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노하기를 급히 하셨다면 회개의 기회도 주지 않으시고, 그냥 심판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 임에도 불구하고 긍휼을 입은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1:16절에서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 3:15절에서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으로 긍휼을 베푸시는 것처럼, 우리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오래 참음으로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오래 참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되고야 말 것이다.

   셋째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햐야만 할 것이다. 본문 2절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되어 있다. 여기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란 말씀은 앞에 나온 “오래 참음으로”의 확대된 미덕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사랑”인 것이다. 여기에서의 “사랑”은 성령에 의해서 공급되어지는 새 시대의 능력으로서, 그 어떤 보상이나 조건을 내걸지 않는 자기 희생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이다.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상대방의 연약함과 결점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다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넷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나가야만 할 것이다. 본문 3절에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 됨”의 생활, 즉 “서로 일치 되는 생활”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이 일체가 되는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수단은 바로 “평안의 매는 줄”인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원수된 관계를 화해시키시고,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장벽을 허물으시고, 화해를 이루셨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 됨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평안과 화해의 대리지”라는 직분을 주신 것이다. 이러한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치가 분열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 “평안의 매는 줄”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매는 줄”이란 바로 “성도들을 묶어 주는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골로새서 3:14절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성도들의 “일치 됨”은 궁극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교회들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이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서 지켜 나가면 되는 것이다. 하나 됨을 힘써 지켜 나가기 위해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 나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 나가면 될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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