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관을 얻을 자
- hjpastor
- Jul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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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오늘은 베드로전서 5장 1절--4절을 중심으로 “영광의 관을 얻을 자”에 대해서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본문 4절에 보면,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영광의 관”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신약 성경에서 단 한번 나오는 “목자장”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는 목자로 불리어졌으나 여기에서는 장로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목자장”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가 있다. 모든 양들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는 “큰 목자”요(히 13:20), “선한 목자”(요 10:11,14)이시며, 베드로를 포함한 장로들은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라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대리 목자들에게 그들의 행위에 따라서 적합한 보상을 해 주실 권리가 있다. 그것의 상급은 바로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인 것이다. 여기 “시들지 아니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마란티논”이란 “아마란티노스”라는 “절대로 시들지 아니하는 꽃 이름”에서 나온 단어로서, “쇠하지 않음”을 상징하며, 그리고 “관”이란 말은 구 성경에서는 “면류관”이란 말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직임을 잘 감당하는 장로들은 그리스도로부터 할당된 상급으로, 영원히 쇠하지 않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로마서 8: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분명하게 약속하고 있다. 직임을 잘 감당한 장로들이나 목회자들은 장차 영원히 쇠하지 않는 영광을 그리스도와 함께 받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사명을 잘 감당한 장로들, 사명에 신실한 목사들은 바로 어떤 자들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사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한 장로들이나 목사들이란 어떤 자들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는 자인 것이다. 여기 “억지로”란 말은 “자원함으로”란 말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부득이 함으로”를 의미하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주어진 직임을 행할 때에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신 마음으로,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심을 가지고 행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20:28절에 보면,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고 바울 사도가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목회자들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열정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의 양무리들을 잘 돌보아야만 한다. 내 교회가 아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에 성령 충만함 가운데 양 무리들을 보살펴야만 한다. 목회자는 인간적인 욕심이나 인간적인 마음으로, 또는 인간적인 열심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부득이함으로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교화를 신실하게 섬기게 될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그 영광을 얻게 될 줄로 확신한다.
둘째로, 목회자들은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2절 하반절에 보면,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구절은 당시의 장로직에 일정한 보수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더러운 이득”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며, “기꺼이 하며”란 말은 헬라어로 “프로뒤모스”라는 말인데, 이것은 헌신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장로들이나 목회자들은 자신의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한다거나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직임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하기 위해서 헌신적인 자세로 열심을 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들을 감당해 나갈 때에 헌신적으로, 희생적으로, 열심을 다해서 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게 될 때에, 그와 같은 자들에게 우리 주님이 장차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셋째로, 장로들이나 목회자들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들의 본이 될 때에 그와 같은 자들에게 우리 주님이 장차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을 확신한다. 본문 3절에 보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 “주장하는 자세”란 권세를 가지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 무리들은 하나님의 것이고, 장로나 목회자의 직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맡겨진 것이기 때문에 장로나 목회자들은 양 떼들을 지배한다거나 다스리는 자세로 양 무리들을 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겸손한 마음과 신성한 모습으로 모든 면에서 양 무리들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양 무리들을 양육하고 먹이며 돌봐야만 할 것이다. 목회자들은 양 무리들에게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양 무리들에게 기도하는 일에도 먼저 본을 보이며, 헌금을 드리는 일에도 먼저 본을 보이며,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에도 먼저 본을 보이며, 매사에 무슨 일에든지 먼저 자신이 모범을 보이게 될 때에 양 무리들은 저절로 그 목회자의 삶을 따라 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양 무리들에게 본을 모이면서 양 무리들을 양육한 목회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장차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는다.
요한계시록 4:4절에 보면,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여기 “금관”이란 바로 “금면류관”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바로 승리와 왕권을 상징하는 면류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가 인격과 행위와 생활이 거룩하고 깨끗하여진 성도가 받는 면류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1: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요한계시록 2:10절 하반절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여기 “생명의 면류관” 또는 “생명의 관”이란 말은 시험을 견디고 이기는 자와 죽기까지 충성스런 믿음을 지키는 자가 받는 면류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마귀가 주는 시험은 믿는 자들의 영혼을 멸망시키는 것이기에, 시험을 참고 이기는 자에게는 그에 반한 생명의 상급을 예비해 주신다고 하는 약속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9:25절에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며 모든 일에 자제와 절제를 행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썩지 아니할 면류관”인 것이다. 경주를 하는 자는 규칙을 어기면 실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반칙과 불법으로 행한 열매는 그 죄가 소리쳐 결국에는 썩고 마는 것이다. 그날에 공력을 불로 태워 시험하실 때에 불에 타지 아니할 견고한 공력을 세우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고, 준행하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목회자로서, 또는 장로로서, 또는 성도로서 장차 우리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기를 힘쓰며, 장차 주님으로부터 머리에 금 면류관을 씌움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여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준행함으로 주님으로부터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씌움받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헬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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