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생활 30년의 역사를 돌아 보면서 (1)
- hjpastor
- Jan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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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필자가 미국에 이민을 왔을 때가 1995년 3월이었으니, 작년 2025년 12월 말 까지를 계산해 보면, 만 30년 10개월이 되었다. 필자가 지난 약 30년 간의 미국 이민 생활을 돌아보면서, 그 경험한 특별한 일들을 오늘과 다음 주 1월 16일자에도 칼럼으로 써 보려고 한다. 필자가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전에는 군목 생활을 하다가 제대를 한 후에 서울 관악구 노량진 지역에 있던 장성중앙교회(예장 합동, 서서울 노회 소속)에서 약 11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젊은 30대의 나이에 담임 목회를 하다가, 필자의 몸에 생긴 심각한 퇴행성 관절염 질병 때문에 교회를 사임을 하고서 치료차 텍사스 휴스턴에 왔던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때가 바로 1995년 3월의 일이었으니, 그 때에 필자의 나이가 젊은 41살의 나이 였었는데, 그 때 사랑하는 아내와 10살과 12살된 어린 두 아들들을 데리고 휴스턴으로 왔던 것이다. 그 후로 벌써 약 30년의 세월이 흘러서 아내는 일터에서 은퇴를 한 지가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고, 작은 아들은 이미 결혼하여서 두 아들들을 거느리고 있고, 큰 아들은 아직 싱글로 켈리포니아에서 혼자서 교회를 잘 섬기면서 병원에서 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첫째로, 먼저 1995년 3월부터 1999년 6월까지 필자가 체험한 내용들을 적어 본다.
이 기간 동안 필자는 휴스턴 메디칼 센터에서 3번에 걸친 대 수술을 통해서 심각한 퇴행성 관절염 치료를 받았었다. 1996년도에 두 번에 걸쳐서 양쪽 고관절에 인공 관절을 넣는 수술을 벤탑 병원에서 받았었다. 나머지 한 군데는 1997년 2월 경에 휴스턴 메소디스트 병원에서 Charity Care Program으로 왼쪽 무릎 관절 수술을 다시 받으면서, 그 곳에 인공 관절을 넣는 수술을 받았었다. 이렇게 3번에 걸친 대 수술을 통해서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었을 때에, 그 동안 약 4년 6개월 동안 교육 목사로 섬겨 오던 휴스턴 충현장로교회(당시 담임 이은재 목사)를 뒤로 하고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1999년 7월에 필자를 어스틴 충현장로교회로 부임케 하셔서, 그 곳에서 대학생들 중심의 목회를 하도록 인도하셨다. 그 교회가 필자가 부임하였을 때에는 다운 타운 지역에서 미국 교회를 빌려서 에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필자가 그 교회를 사임하기 직전에 교회를 좀 편리하고 좀 더 아름다운 교회당으로 이전을 하고서(현재도 교회 이름을 바꾼 큰빛교회가 그 교회를 사용하고 있음), 필자는 2000년 7월에 가정 사정 때문에 그 교회를 사임을 하고 휴스턴으로 다시 이사를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필자는 목회자에게 교회 목회도 중요하지마는 가정이 더 소중하다고 하는 진리를 몸소 경험하기도 하였었다(딤전 5:8). 그래서 1999년 7월부터 2000년 7월까지는 어스틴에서의 목회 생활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둘째로, 2000년 10월부터 2010년 8월까지의 약 10년 동안이 필자가 미국 교회를 빌려서 교회를 개척한 기간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어스틴에서 살았던 약 1년 동안에는 아내가 휴스턴에 있는 우체국 직장 때문에 휴스턴에 체류하면서 살았었고, 주말에는 어스틴으로 잠시 내려 왔다가 또 월요일이면 휴스턴 우체국으로 출근하기 위해서 올라왔던 것이다. 그렇게 생활을 해 오다가 1999년 12월 말 경에 아내가 그날도 어스틴에서 휴스턴으로 출근을 하기 위해서 자동차 운전을 하다가, 아이텐에서 그만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수 밖에 없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제 아내의 생명을 살려 주셨지마는, 자동차는 완전히 다 망가져서 폐차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때 그 일도 필자의 가정을 이사하는 일에 작용하게 되어서, 필자가 어스틴에서 휴스턴으로 두 아들들을 데리고 2000년 8월 경에 이사를 오게 되었던 것이다. 휴스턴으로 이사를 온 후에 필자는 교회 개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필자가 살고 있던 아파트 근방에 있는 열 개의 미국 교회들을 골라서 그 교회에 한인 교회를 개척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렇게 열 통의 편지들을 보냈었는데, 답장이 온 교회는 딱 한 교회 뿐이었다. 그 교회가 바로 필자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St. Thomas Presbyterian Church(PCUSA)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흔쾌히 허락이 되어서 처음에는 교회 이름을 “믿음장로교회”로 해서 개척을 시작한 때가 바로 2000년 10월 1일 주일이었던 것이다. 그 교회의 본당을 빌려서 매 주일마다 미국 교회가 예배를 마친 후인 오후 1시 30분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수요 저녁 예배와 토요 새벽기도회를 드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예배를 드려 오다가 이철훈 목사님이 담임 목회를 하고 있던 뉴송교회를 사임하시고, 켈리포니아로 목회지를 옮길 계획을 가지고 계셔서, 그 교회와 우리 교회가 합병하게 되면서, 교회 이름을 2010년 1월부터 “새 믿음장로교회”로 변경하였던 것이 지금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 후에 광명교회와 다시 교회를 합병하게 되면서 필자가 섬기던 “새믿음장로교회”가 현재 예배당이 있는 9742 Clay Road로 이주하게 되어서, 2010년 9월부터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로, 2010년 9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약 14년 동안 새 믿음장로교회를 목회하게 하신 후에 은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필자는 말하자면 2000년 10월부터 2010년 8월까지는 미국 교회에서 목회를 해 왔었고, 2010년 9월부터 지난 2024년 11월까지는 9742 Clay Road에 새로운 예배당이 있는 “새 믿음장로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를 해 오다가, 지난 2024년 11월 10일 주일에 교회를 은퇴하고서 새 담임목사인 김현진 목사에게 후임을 물려 주었으니, 새 믿음장로교회 목회를 만 24년 하고도 약 2개월 동안 담임 목회를 한 셈이다. 교회를 개척해서 후임에게 물려 줄 때까지 줄곧 24년여 기간 동안을 부족한 종과 함께 해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해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2010년 9월부터 교회에서 짊어지고 있던 은행 부채를 매월 1,500불 정도씩 갚아 나가다가, 2017년 11월에 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어떤 권사님이 교회 앞에 5만불의 건축 헌금을 해 주셔서, 그 헌금에다가 교회 재정에서 1만 불을 합하여 남아 있던 은행 부체 6만불을 모두 다 갚도록 인도해 주신 분도 역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확신한다. 그리고 2024년 11월에는 필자의 나이가 70이 되어서, 자진 은퇴를 하기로 결심하고서 후임 목사이신 김현진 목사님을 켈리포니아에서 모셔 오게 되었는데, 지난 1년 2개월 동안 새 목사님이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필자가 오히려 감동을 받을 수가 있어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지 모르겠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지금도 계속해서 선교사들(4분의 선교사 후원과 한 선교단체를 돕고 있는 일)을 후원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더 나아가서 지역 사회를 위해서 많은 봉사와 섬김을 실행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래서 최근에는 홈레스 사역을 담임 목사님을 중심으로 실행하게 되면서 월요일과 토요일 아침, 이렇게 일 주일에 두 번 씩을 홈레스들을 도우며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노인회관에는 한 달에 한번씩 방문하여 어르신들에게 떡을 제공하며 예배를 인도하는 일과 널싱홈에도 한 달에 한번씩 방문하여 어르신들에게 떡을 제공하는 일과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께 에배를 드리고 있는 일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앞으로도 더욱 더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말씀 중심으로 나아가면서 선교하는 일과 봉사하는 일에 매진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머지 네번째 이후의 내용들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1/16/2026)에 계속해서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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