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자 한국일보 종합뉴스에 의하면, 기사의 제목이 “집콕에 깊어진 갈등—-코로나 이혼 상승”이란 제목이었다. 내용에 들어가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 속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부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신조어인 “코비 디보스”(CoviDivorce, 코로나 이혼) 까지 등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라디오 플랫폼 아이하트라디오는 지난달 31일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전염병 대유행 시기에 부부가 한 집에 머물며, 금전 문제, 재택근무 적응 문제, *자녀 온라인 수업 교육 문제 등으로 고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부부 관계까지 나빠져 이혼률이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해당 기사는 한 설문조사를 인용해 응답자의 31%가 코로나 19확산으로 인해 도시가 폐쇄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부 사이에 회복할 수 없는 정도의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대답했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또한 “각종 볍률 서류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리걸 템플랫(Legal Template)’사는 코로나 19 확산 시기를 중심으로 이혼 서류 구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리걸 탬플랫에 따르면 코로나 19확산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인 지난 2월에 비해 최근 이혼률은 57%나 증가했으며, 특히 신혼부부들의 이혼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난 해의 경우 결혼한 지 5개월 미만의 신혼부부가 이혼하는 사례는 ‘리걸 템플랫’에서 이혼 서류를 구매하는 고객들 전체 건수의 11%에 불과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20%를 차지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하루 종일 배우자와 함께 집에 있다보니 단점도 더 눈에 띄고, 서로에게 짜증내는 횟수도 늘었다’며, ‘이혼 생각이 절실한 요즘’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COVID 19)와 이혼(Divorce)의 합성어인 ‘코로나 이혼(Covidivorce)’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코로나19로 인해 가정마다 부부간에 갈등이 불거지고 이혼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한인 가정법 전문 변호사는 ‘최근 이혼 관련 전화 문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장기간 코로나19로 인한 갇힌 생활을 하면서 부부 사이의 곪은 감정이 분출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위의 한국일보 종합뉴스 기사에 의하면 현재 코로나 19로 인한 이혼률이 예년보다 더 많이 늘고 있다고 하는 보고이다. 너무나 슬픈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필자는 일찌기 결혼 17년쯤(1999년 7월부터 2000년 7월까지) 되었을 때에 필자의 아내의 직장문제로 인하여 필자의 아내와 두 아들들을 데리고 있던 필자 사이에 약 1년여 기간 동안을 떨어져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에 필자는 어스틴에서 목회하는 사역과 가정이 합하는 문제를 가지고 약 1년 동안 고민 고민을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하다가 그만 1999년 12월 말 경, 필자의 아내가 주초인 월요일 새벽에 어스틴에서 휴스턴으로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내려가다가 그만 자동차 사고를 크게 낸 적이 있었다. 그 때에 다행히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필자의 아내가 부상을 입지 아니하고, 자동차만 폐차하고서 보험처리를 하므로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 사건도 필자가 결단을 내리는 데 크게 작용을 하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필자는 어스틴에서 목회하던 교회를 약 1년 만에 사임을 하고 후임자에게 물려 준 후에 휴스턴으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어서 그 후로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한 장소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에 필자가 너무나도 잘 결정을 하였다고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때에 필자의 가슴에 성령을 통하여 늘 말씀하셨던 성경이 바로 디모데전서 5장 8절이었다. “누구든지자기친족특히자기가족을돌보지아니하면믿음을배반한자요, 불신자보다더악한자니라”는 말씀이었다. 필자는 이 말씀을 통하여 물론 목사가 교회 목회를 하는 사역도 중요하지마는, 더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가정 목회인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목회자가 아무리 목회를 잘하고 아무리 목회를 크게 하였어도, 자기 가족들을 돌보지 않음으로 인하여 가정이 어려워진다거나 가정이 파탄이 나버린다면, 그 화려한 목회 경력들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필자는 주위의 목회자들 중에 가정보다도 목회에 더 많이 신경을 쓰다가 자녀들이 비뚤어진 길로 간다거나 아니면 사모와의 사이에 관계 악화로 인하여 서로 이혼을 한다거나, 아니면 가정이 사회인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경우들을 많이 보아 오고 있다. 목회자의 가정이 잘 되고, 행복할 때에 사회로부터, 또는 성도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고, 선망의 대상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교회 목회를 가볍게 여기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목회도 성실하게 잘 해야 하지마는 가정 목회는 그보다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코로나시대—가정의화목을위해힘쓰는기간”으로 정하고, 우리 모두가 열심히 달려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코로나 시대에 부정적으로 가정의 이혼률이 늘어난다거나 가정의 화목이 깨져버리고 마는 불행한 기간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오히려 가정의 화목함과 행복이 넘치며, 가정이 오히려 견고해 지는 기간으로, 가정이 오히려 축복의 역사들이 많이 나타나는 기간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가정의 소중함과 가정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알고, 깨달아야만 한다. 아까 앞에서 인용하였던 말씀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가족을 돌보며 자기 가족을 아낄줄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가족을 “돌본다”는 말은 영어 성경에 “provide”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호주로 사는 남편들은 아내를 돌보며, 자녀들을 돌보아야만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또한 아내도 남편을 돌보며, 자녀들을 돌보아야만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돌본다는 것, 또는 제공한다는 것은 먼저는 가족들을 물질적으로 돌보는 것이며, 또한 영적으로도 돌보는 것이며, 또한 육신적으로도 돌본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정신적으로도 돌본다는 뜻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축복된 가정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서로 물질적으로 도와 주고 돌보며, 영적으로 서로 기도해 주며 영적인 말씀을 가지고 함께 서로 나누며, 육신적인 문제도, 정신적인 문제도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며 서로에게 조언도 해 주며,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또한 자녀들에게도 부부가 삶에 본을 보이면서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에도 힘써야만 할 것이다. 특히 자녀들을 위한 일반 교육도 중요하지마는 자녀들을 위한 영적인 교육, 신앙적인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
자녀들은 보통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부모의 곁을 떠나서 대학을 타 지역으로 가게 되는 것을 본다. 그러니 대학생활부터는 자녀들이 자의로 교회에도 가야 하고, 자의로 십일조 생활도 해야 하고, 자의적으로 교회 생활, 신앙생활도 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18세까지 자녀들을 위한 신앙 교육이 그 부모를 통해서 올바르게 되어 있지 않는다면, 그 자녀들은 대학 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될 것이고, 오히려 그 자녀들이 공부하는 일보다는 다른 일에 신경을 쓰다가 그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
필자는 제목에서 지적히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코로나 시대를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위해서 힘쓰는 기간으로 정하면 얼마나 좋겠는가하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코로나 시대가 오히려 가정의 갈등을 조장하게 되고, 이혼률이 많아지게 되고, 가정이 심각하게 파탄나게 될 위기에 처해지는 기간이 아니라, 코로나 시대를 가정의 화목과 가정의 행복을 더욱 더 돈독하게 만드는 축복의 시기로 정하면 참 좋겠다. 지금이 코로나 19의 창궐함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때라 할찌라도 더욱 더 상대방에게 부드럽고, 인자하게 대하며, 긍휼한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며, 용서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더욱 더 즐겁고, 더욱 더 행복한 사회로 바뀌어지게 될 것을 확실하게 믿는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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