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야고보서 5:7-11절을 본문으로 “주님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야고보서 1:4절에 보면, “인내를온전히이루라. 이는너희로온전하고구비하여조금도 부족함이없게하려함이라”고 말씀하고 잇다. 히브리서 12:1절에 보면, “이러므로우리에게구름같이둘러싼허다한증인들이있으니, 모든무거운것과얽매이기쉬운죄를벗어버리고, 인내로써우리앞에당한경주를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히브리서 10:36절에 보면 “너희에게인내가필요함은너희가하나님의뜻을행한후에약속하신것을받기위함이라.” 로마서 5;3-4절에 의하면, “다만이뿐아니라, 우리가환난중에도즐거워하나니, 이는환난은인내를, 인내는연단을, 연단은소망을이루는줄앎이로다.” 이렇게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주님이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명령하시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여 오시는 그 순간까지 추호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직 길이 참고 인내하면서 주님만을 바라보고서 앞을 향하여 달려 가야만 할 것이다.
첫째로, 우리 성도들은 농부의 인내를 배워야만 할 것이다. 야고보서 5:7-8절에 보면, “그러므로형제들아주께서강림하시기까지길이참으라. 보라농부가땅에서나는귀한열매를바라고, 길이참아이른비와늦은비를기다리나니, 너희도길이참고마음을굳건하게하라. 주의강림이가까우니라.” 농부들은 수확을 거두기 위하여 이른 봄부터 밭에다가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땀흘려서 곡식을 가꾸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을에 가서는 그 결실의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이 땅에서 나는 소중한 열매를 바라는 농부의 열심이 있는 인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필자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김제 황산 시골에 살면서 부모님들이 사과 나무 과수원을 경영하시면서 또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봄에 모내기를 할 때에 모를 심는 일들은 인부들이 하였지마는, 필자는 인부들이 모를 심을 때에 줄을 잡아 주는 일을 한 적이 있었디. 그 줄에서 모를 다 심게 되면 “어이”하고서 또 그 다음에 줄을 땅에 박아 놓으면, 인부들이 그 줄에 따라서 모를 다 심고, 또 다 심으면 “어이”하고서 그 다음에 줄을 박아 놓으면, 인부들이 그 줄에 따라서 모를 심었던 것이다. 이렇게 농부들이 봄에 땀을 흘리며 모를 심고, 여름에는 나락들을 부지런히 가꾸어 주고, 그리고 가을이 되면 그 나락들이 잘 여물어 이삭이 되어서 추수를 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 알의 쌀을 만들기 위해서 농부들이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일을 하고, 추수할 때를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이 심판주로서 재림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실 그 때까지 길이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원망하는 일이 없어야만 할 것이다. 야고보서 5:9절에 보면, “형제들아서로원망하지말라. 그리하여야심판을면하리라. 보라심판주가문밖에서계시니라.” 여기에 “원망한다”의 헬라어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신음하다”, 또는 “탄식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헬라어인 “스테나제태”라는 말은 금지를 나타내는 “매”와 연결이 되어서 “탄식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동기에서 일어나는 불평이나 핍박자들을 향한 원한의 탄식을 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온전히 기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해야만 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만이 우리가 심판을 면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지자들의 인내를 배워야만 할 것이다. 야고보서 5:10절에 보면, “형제들아주의이름으로말한선지자들을고난과오래참음의본으로삼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구약 성경의 다니엘 선지자는 사자굴 속에 던져 지는 혹독한 형벌을 받았었지마는, 그가 참고 인내하면서 묵묵히 순종하였을 때에 능력의 하나님이 그 위기 속에서도 다니엘을 구출해 주신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였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의 비방을 받으면서 구덩이에 던져 지는 고통을 당하였었지마는 그가 참고 인내하였을 때에 능력의 하나님이 그를 그 구덩이에서 건져 주셨던 것이다. 신약의 스데반 집사는 예수를 증거한다고 하는 이유로 백성들의 돌에 맞아서 순교를 당하면서도, 그들을 향해서 욕을 하거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는 무릎을 꿇고 크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여, 이죄를그들에게돌리지마옵소서”(사도행전 7:60)라고 간절히 기도하고서 그의 목숨이 끊어진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순교라고 하는 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라, 고난을 극복한 인내의 극치요 승리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인 여러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증거하며 외치는 일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서 도 좌절한다거나 중도에 하차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고서 달려갔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에수 그리스도만을 붙잡고, 끝끼지 인내하면서 달려가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욥의 인내를 배워야만 할 것이다. 야고보서 5:11절에 보면, “보라인내하는자를우리가복되다하나니, 너희가욥의인내를들었고, 주께서주실결말을보았거니와주는가장자비하시고, 긍휼히여기시는이시니라.” 필자는 군목으로 있을 때에 양평에 있는 포병 연대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하여 청평에 엤는 59 후송병원에 가서 약 3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서 자대로 돌아 온 적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필자는 욥기 1장부터 42장까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얼마나 많은 도전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 때에 가장 은혜스러운 구절이 바로 욥기 23:10절의 말씀이었다. “그러나내가가는길을그가아시나니, 그가나를단련하신후에는내가정금같이되어나오리라.” 욥의 이 고백과 같이욥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단련을 받은 이후에 정금과 같은 위대한 신앙으로 무장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욥기 42장에 가면, 욥기 42:10절에 “욥이그의친구들을위하여기도할때에여호와께서욥의곤경을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욥에게이전모든소유보다갑절이나주신지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욥의 세 친구들인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욥이 곤경에 처했을 때에 욥을 위로하기는 커녕 그를 저주하면서 욥을 비방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이라고 욥을 깔아 뭉게고, 얕잡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욥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정금같은 신앙으로 무장하였을 때에 욥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였을 때에 우리 하나님은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의 소유보다 갑절의 복을 주셨으며, 뿐만 아니라 다시 새로운 아내(야곱의 딸 디나)를 허락해 주셔서 자녀들을 7남 3녀를 주셨는데, 그 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욥의딸들처럼아리따운여자가없었더라, 그들의아버지가그들에게그들의오라비처럼기업을주었더라”(욥기 42:15)는 복을 얻은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이후로 욥은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고, 백 사십년을 더 살다가 나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은 것을 알 수가 있다. 70인역에 의하면 욥이 240세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욥과 같이 고난을 당하고 환난을 당할 때에 결코 하나님을 원망한다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달려가게 될 때에 결국에는 욥과 같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강림하시까지 길이 참으라”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다 농부와 같이, 선지자들과 같이, 또한 욥과 같이 우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좌절한다거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견디게 될 때에 결국에 가서는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될 줄로 믿는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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