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의의 면류관을 받을 성도들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오늘 필자는 디모데후서 4장 5--8절을 중심으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성도들”이란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본문 8절을 보면,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바울이 선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에 보면 바울이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증언하고 있다. 여기에서 “면류관”이란 말은 헬라어로 “스테파노스”인데 이것은 바울 당시에 운동 경기의 승리자에게 수여하던 것으로, 월계수 나무나 상수리 나무 등의 잎을 엮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 당시 “왕들”이 쓰던 “왕관” 과는 다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왕관이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구절에 나오는 “면류관”은 성도들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면류관”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이며, 다스리는 특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면류관”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의의 면류관”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에서 “의의 면류관”이란 말에 대해서 몇 가지 해석들이 있지마는 분명한 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 수여되는 면류관”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본다.  바울이 본문에서 “의의 면류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지하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지마는, 다른 성경에 보면 이것이 “영생”을 의미하기도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디모데전서 6:12절에 보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라고 바울이 선포하면서, “의의 면류관”이란 말 대신에 “영생”(Eternal Life)”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 “의로우신 재판장”이란 장차 구름 타시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결단코 그 어떤 오류나 실수가 전혀 없으신 “정확 무오하신 정의로우신 재판자”이심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의의 면류관”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은 바울에게만 아니라, 또 누구에게도 주신다고 했는가?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라는 말은 “주의 재림에 대해서 간절히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에게 주어질 “의의 면류관”이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오늘 필자는 본문을 중심으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성도들”이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만 마땅한 것인가?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첫째로, 의의 면류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을 우리 성도들의 삶은 먼저는 바울과 같이 이 땅에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만 할 것이다. 바울은 본문 디모데후서 4:6-7절에서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여기서 “전제”란 말은 영어 성경에서는 “Drink Offering”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것은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 위에 붓는 일종의 “제주”를 의미한다고 한다. “제주”를 붓는 행위는 “희생 제사”의 마지막 의식으로서, 바울 자신의 “희생적인 순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 본문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예견하고서 자기의 남은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와 온 교회를 위하여 산 제물로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고 하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노골적으로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순교의 제단 위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게 될 그 시각이 가까운 이 시점에서 바울이 뭐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은 바울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골로새서 1:29절에도 보면,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사도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을 싸운다”고 하는 것은 “내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힘을 다하여 끝까지 수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6:11-12절에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기서 “선한 싸움”이란 “레슬링이나 권투 경기와 같은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이 힘을 다하여 끝까지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서 면류관을 받게 될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면서 주의 은혜로 반드시 승리해야만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디모데전서 3:11절에 있는대로 먼저는 “이것들을” 피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들을 피하라는 말은 바로 악을 피하라는 것이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을 알고, 이것을 탐내는 자가 되어서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르는 악을 피하라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멀리하다가 마음이 부패하여져서 미움과 다툼과 악한 의심을 하다가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는 이런 악한 일들을 피하라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들을 피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는 의를 따라야만 할 것이다. 여기 “의”란 “디카이오수네”란 말인데, 이것은 “공의”를 뜻하는 말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들을 행하는 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을 행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기 위해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한 일들을 끝까지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경건을 따라 가야만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믿음을 따라야만 할 것이다. 여기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우리의 생각과 사고와 의지와 감정과 행동 등 우리의 온 몸으로 하나님깨 충성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따라아먄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인내를, 그 다음에는 온유를 따라 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비로 우리 성도들이 악을 피하고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면서,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반드시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둘째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달려갈 길을 끝꺼지 달려가야만 할 것이다. 본문 7절에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사도 바울이 순교를 각오하고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 “달려갈 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드로몬”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마라톤 경기에서 정해진 경주 코오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사명”을 비유한 말인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이 맡기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 동안에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애쓰며, 살아온 자신의 전 생애”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0:24절에 보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 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것이 바로 바울 사도의 평소의 신앙 정신이었던 것이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도 바로 이와 같은 신앙 정신으로 끝까지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달려가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성도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만 할 것이다. 디모데후서 4:7절에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 믿음을 “지켰으니”란 말은 군인이 상관에게 충성을 지켰다고 하는 의미도 있고, 또한 청지기로서 그 어떤 악 조건 속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포기한다거나 저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켜 나가다가 후대에게까지 남겨 주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믿음으호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이 받게 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이 믿음을 지키면서 이 믿음을 기어코 후대들에게 물려 주어야만 할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바울이 증언한 대로 이 땅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며, 믿음을 끝끼지 지키므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의의 면류관, 의의 영광스러운 면류관, 영생의 복을 받게 되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헬렐루야!              

 
 
 

Recent Posts

See All
미국 이민 생활 30년의 역사를 돌아 보면서 (2)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 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미국 이민 생활 30년의 역사를 돌아 보면서 (1)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2026년도 새 해애 바라는 간절한 소원들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Comments


new Faith Presbyterian Church of Houston, PCA

936-463-8640

pastor@kfpch.org

9742 Clay Road,
Houston, TX 77080

Thanks for submitting!

  • White Instagram Icon
  • White YouTube Icon
  • White Facebook Icon

Terms & Conditions

Privacy Policy

Accessibility Statement

©2024 by New Faith Presbyterian Church.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