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에 의하면 삼일 만에 무덤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맨 먼저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주님의 능력으로 고침받았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안식후 첫날 새벽에 보이셨고, 그 다음 두번째로는 안식후 첫날 저녁 때에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꽁꽁 닫고 있던 열 명의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그 다음에 세번째로는 그로부터 여드레 후에 의심이 많았던 디두모라고 불리는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그 자리에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던 것이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에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말하였지마는 의심이 많았던 도마가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한복음 20:25)고 제자들에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도마는 자기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못자국 난 손에 넣어 보지 않고는,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옆구리에 자기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당당히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마는 아무리 열 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고백을 하여도 그들의 말을 추호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부활의 주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난 당하신 예수님만 믿고 있지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반쪽자리 믿음일 뿐이다.
열 제자들이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에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나서 도마도 그 집 안에 있을 때에, 그러니까 열 한명의 제자들이 집 안에 있을 때에 문들이 닫혔었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가운데 세번째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잇을지어다”(요한복음 20:26). 세번째로 열 한 제자들이 모인 그 자리에 주님이 오셔서도 그들에게 먼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그들에게 평안을 빌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항복음 20:27)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때서야 도마가 이렇게 대답하였던 것이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28). 그러자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이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복음 20:29).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본문의 말씀을 배경으로 “의심하던 도마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이란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첫째로 도마는 믿음 없는 자가 되어서 열 제자들이 아무리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다고 말을 해도, 자기가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자기 손가락으로 그 못 자국에 넣으며, 자기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호언 장담하였던 인물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도마는 믿음이 없는 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믿음이 없던 자 도마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우리 기독교의 핵심이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주님의 이 말씀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명령인 것이다. 꼭 그렇게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님의 명령은 도마가 보여준 의심과 회의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아직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또한 도마가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주님의 애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마침내 도마를 감화시키게 되었고, 그로부터 위대한 신앙 고백을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둘째로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에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가 주님이 허락하신 대로 그 분의 손과 옆구리를 직접 자기 손으로 확인을 해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므로 잘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도마는 주님의 말씀을 듣자 마자 분명한 신앙 고백을 하였던 것이다. 이 고백은 원문상으로는 “나의 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라고만 되어 있다고 한다. 한 때는 의심이 많았던 도마가 증거를 요구하면서 믿음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였지마는, 지금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신앙 고백은 과거의 그의 실수를 만회할 만하며, “나의 선생님”이리고 고백한 막달라 마리아의 신앙 고백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 속에서 생전의 주님을 재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인데, 이것은 바로 예수의 부활의 의미를 그가 진정으로 이해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에 기록된 이 결정적인 도마의 신앙 고백은 처음 예수의 본원적 정체가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였던 것과 병행이 되면서(요 1:1), 예수 그리스도의 진면목을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기 이전에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영원한 말씀, 곧 로고스이셨으며,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다시 영화롭게 되신 분이신 것이다(요17:5). 요한복음 17:5절에 보면,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우리는 도마의 신앙 고백 속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계시며, 아버지 하나님과 같이 영화롭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모습을 발젼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세번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고서 믿는 자가 되지 말고, 보지 않고도 말씀 그대로를 믿는 자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주님의 이 말씀 속에서 일단은 도마의 믿음이 인정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본 것에 근거한 것이었다. 주님이 간절히 바라는 바는 “믿음”이지마는 그 믿음에 이르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이다. 하나는 보아야만이 믿는 형태이며, 이 믿음은 현상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모종의 이적을 요구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보지 않고도 믿음을 갖는 것이다. 즉 어떤 이적적인 사건에 의하지 않고도 믿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물론 도마를 비롯하여서 다른 제자들도 바로 전자의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더 바람직한 것은 후자의 경우인 것이다. 이것은 오고 오는 후대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하였고, 그 결과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특정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지 않고서도 제자들이 가졌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에 있어서 보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신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증거하고 있으며, 또한 성령에서 친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직접 보지 않고도 믿음으로 받아 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고서 믿는 자보다도, 보지 않고서 믿는 자들이기에 활씬 더 복이 있는 자들인 것이다.
의심 많던 도마에게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우리가 분명히 체험하고, 확신하고, 세상 속에 들어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힘차고 용기있게 외치며, 증거하며, 선포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후에 도마(Thomas)는 죽음을 부릎쓰고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도로서 벌겋게 달군 접시 위에서 고문을 받았으며, 풀무에 들어가서 잔인한 창으로 찔려서 순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약 70년 경에 갈라미니아에서 갈라미니아 원주민들로부터 비참하게 고문을 당하다가 창에 찔려서 죽었다고 한다. 우리 모든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정신으로 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만 할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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