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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날에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Writer: hjpastorhjpastor

    미국에서 처음으로 “아버지 날”(Father’s Day)을 기념했다는 기록은 1908년 7월 5알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페어몬트(Fairmont, West Virginia)에서 처음 “아버지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 전 해에 겨울 인근의 모논가(Monongah) 광산에서 큰 사고로 인하여 무려 362명의 광부들이 비참하게 사망하게 되자, 페어몬트에 소재한 중앙연합감리교회에서 사망한 아버지들을 위한 추모 모임을 통해 “아버지 날”이 제안되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아버지 날 제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워싱턴 주 스카이네 출신으로 결혼 후 알칸소에서 살던 소노라 스마트 도드(Sonora Smart Dodd)로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남북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으로 다른 5명의 형제들과 함께 어려움 없이 자라서 어른이 되자 아버지의 희생과 고마움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1909년 소노라는 자신이 다니던 스포케인 교회의 목사와 신도들에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6월 5일에 “아버지들을 위해 예배를 드리자”고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시일이 너무 촉박하므로 그 날로부터 2주 후인 6월 19일에 아버지를 위한 헌정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그 후로 워싱턴 주는 매년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 날”로 기념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60여년이 지난 1966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아버지 날”을 6월 세번째 주일에 지킬 것을 제안하였으며, 1972년 라차드 낙슨 대통령이 국가 기념일로 정하는 대통령 포고에 서명하면서 이 날은 법적으로 미국에서 공식 국가 기념일이 되었다고 한다.

   올 해는 아버지 날이 6월 20일 주일인데 이 아버지 날을 앞두고서 필자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오늘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의 아버지는 1928년 생이셨는데 지난 2008년 8월 14일에 한국에서 80세를 일기로 먼저 천국으로 들어가셨다. 그 해에 필자의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하는 연락을 받고 필자 혼자서 8월 초순경에 한국을 방문하여, 김제의 모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계시던 아버지를 뵈러 갔었다. 지병으로 인하여 매우 수척해 지시고 매우 힘들어 하시던 아버지를 뵙고서 마음이 몹시 아팠지마는 아버지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온전하게 쾌유되시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드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 때문에 서울로 올라 왔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 해 8월 16일에 미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서울에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8월 14일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 장례식을 위해서 급히 김제로 내려 오라고 하는 연락을 동생으로부터 받았다. 그래서 항공사에 연락해서 비행기 타는 일정을 3일 뒤로 연기하고서 김제로 내려가 아버님을 위한 모든 장례 예배 절차들을 모두 다 잘 마치고 난 후에 미국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필자가 아버지를 여윈지 올 해로 13년째를 맞이하면서, 또한 2021년 6월 20일 아버지 날을 앞두고 있으면서 필자가 그리운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째로 필자의 아버지 장로님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필자가 서울 봉천동에서 신학대학과 신학교를 다닐 때인 7년 동안 거의 한번도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올 해 9순을 바라보시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매일 새벽기도를 하러 일찍 일어나서 교회로 가셨었다. 그 당시에 필자도 매일은 따라가지 못하였지마는 부모님을 따라 새벽에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회를 참석하곤 하였었다. 아버님은 새벽기도회 뿐만 아니라 금요 철야 기도회에도 참석하셨고, 어떤 때는 기도원에도 들어가셔서 금식 기도를 하신 일도 몇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자의 부모님들의 간절한 눈물의 기도와 헌신으로 우리 4형제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만큼의 많은 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다. 필자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로 필자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부족한 종이 주님이 요구하시는 목사가 되도록 하나님 앞에 서약하시고 그 일을 위해 열정적으로 기도하시고 헌신하신 분이시다. 필자의 부모님은 전라북도 옥구와 함열에 사셨었는데, 두 분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친 이후로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를 하셨었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만일 첫 아이로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이를 주의 종으로 바치겠나이다”라고 서원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 기도를 한 후에 첫 자녀를 낳게 되었는데, 그 자녀가 바로 필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의례히 주의 종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자랐었다. 그러나 필자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약 3년 동안은 부모님들께 반항을 하면서 주의 종이 되지 아니하고 판사나 학교 선생이 되어서 장로로 교회를 섬기겠다고 부모님 앞에서 큰 소리를 쳤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반항하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다 마쳤을 때인 1973년 2월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시골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는데 그 때만 해도 월요일 저녁에 부흥회를 시작해서 토요일 새벽에 끝났었다. 그러니까 저녁 부흥회가 5회, 새벽기도회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5회, 낮 성경공부가 화,수,목,금 이렇게 4회 모두 총 14번에 걸친 집회에 필자도 부모님과 함께 참석하면서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고, 그 때에 필자가 하나님 앞에 완전히 거꾸러져서 주님의 종이 되어서 주님을 위한 사역들만을 하기로 작정을 하고, 그 주간의 토요일에 부흥 강사 목사님이 서울로 올라가실 때에 필자도 전주에 가서 같은 고속버스를 타고서 함께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고, 그때에 총신대학교 입학 시험을 치루고 합격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해에 부모님들이 시골 과수원을 모두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그 때부터 신학대학과 신학교를 7년 동안 다닌 후에 예장 합동측 함남노회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부모님에게 주신 선물들이 모두 4형제들이었는데, 그 중에서 첫째와 셋째 아들 둘은 목사로 만들어 주시고, 둘째와 넷째 아들 둘은 사업가로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째를 하나님께 바치게 되니 하나님이 저의 가정에 큰 복을 주셔서, 하나님이 셋째도 목사로 만드셔서 주의 종으로, 선교사로 사역하게 하시고, 둘째와 넷쩨에게는 재물 얻는 복을 주시려고 사업가로 만들어 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특별히 돌아가신 아버님과 살아계신 어머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셋째로 필자의 아버님은 살아 계실 때에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서 항상 주님의 보혈에 관한 신앙 서적들을 많이 읽으셨던 분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어깨 너머로 아버지가 읽으시는 책들을 주로 보면 거의 모두가 주님의 보혈에 관한 책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주님의 보혈에 관한 책에 붉은 줄들을 그으시면서 열심히 그 책을 읽으시고 필자에게도 항상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구원함을 받고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되어 천국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해 주셨다. 그 때의 아버님의 가르침과 훈계로 인하여 지금도 주님의 구원의 십자가, 구속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그 크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에베소서 6:1-3절에 보면, “자녀들아주안에서너희부모에게순종하라이것이옳으니라. 네아버지와어머니를공경하라이것은약속이있는첫계명이니이로써네가잘되고땅에서장수하리라.” 자녀로 태어난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부모님에게 순종하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순종하며 공경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이 땅에서 잘 되게 하시고, 또한 장수하는 복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한 가운데 있다 할찌라도,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일과 공경하는 일 만큼은 우리가 실천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필자의 아버님은 천국에 이미 들어가셔서 아브라함의 품에 편안하게 안겨 계시겠지마는 필자의 어머니는 구순이심에도 불구하고 건강하시기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어머님의 남은 여생 동안 더욱 더 강건하시므로 우리 자녀손들을 위해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하시며 더욱 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어머니, 항상 존경스러운 어머님으로 살아가시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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