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 hjpastor
- 1 day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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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지난 시간부터 필자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72년 동안의 모든 삶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내 삶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다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첫 번째 칼럼을 언급하였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칼럼을 쓰려고 한다.
3) 필자가 군목으로 임관하여 3년 동안 보병 제20 사단에서 근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필자가 1980년 2월 25일, 26살의 나이에 함남노회 주관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에 1980년 4월에 당시 광주에 있던 육군 보병학교에 들어가서 6월까지, 3개월 동안 군목 후보생 훈련을 받았었다. 훈련을 처음 약 7주간 정도를 마쳤을 때에 5월 18일 주일날 처음으로 광주 시내로 제한을 해서 부대에서 첫 외출을 나갔었다. 친구 목사와 필자는 광주중앙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주일 예배를 은혜롭게 다 드리고, 그 부근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서 나왔었는데, 대학생들이 경찰들을 향하여 돌팔매질을 하면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에서 대모를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살벌한 광경을 목격한 우리들은 군복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도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하고서 택시를 잡아 타고서 부대로 일찍이 귀대하였던 것이다. 그 다음날(5월 19일)부터 광주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광주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우리 20사단 병력들이 투입되었다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나중에는 그 20사단 병력들을 모두 철수시키고서 그 자리에 공수부대원들이 투입되어서 그 후에 수습이 겨우 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살벌한 현장이었음에도 우리는 겨우 모든 훈련들을 6월말까지 다 잘 마치고서 7월에는 성남에 소재한 행정학교로 이동해서 한달 동안 훈련을 받고 나서 8월 1일부토 중위 계급장을 달게 되었고,필자는 양평에 소재해 있던 보병 제20사단 포병부대로 배치되었던 것이다. 포병 부대에서는 부대 내에 있던 독신장교 숙소에서 지내면서, 군종장교로서 매주 수요일이면 예하 부대로 내려가서 부대원들에게 정신 교육을 시키며, 정신 무장을 시키는 일을 주로 하였었다.포병부대의 예하부대에 있는 4개 대대에 소재한 교회들을 열심히 돌보면서 수고하는 군종병들을 격려해 주며 교육하는 일들도 감당하였었다.
이렇게 2년 동안을 포병 부대에서 군목으로서 사역을 하다가, 1982년 8월부터는 사단 사령부에 있는 단결 군인교회로 배치가 되어서, 거기에서 1년 동안을 사역을 하다가 1983년 7월 말부로 제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20사단 단결 군인교회에서 매 주밀마다 약 1년 동안 주일 설교를 맡아서 진행하였었는데, 그 때에 당시 소장 계급을 가지셨던 최세창 사단장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매 주일마다 참석하셔서 맨 앞줄에 앉으셨었는데, 그 때에 더욱 열정적으로 설교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1982년 10월에는 필자에게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게 되었었는데, 그 일은 바로 현재의 아내를 만나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서 서울 대성교회(당시 담임목사 사기행 목사님)에서 결혼식을 한 일이었다. 필자가 퇴행성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파서 청평에 엤던 59후송 병원에 입원하여서 1982년 3월부터 5월까지 약 3개월간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부대에서 국군 간호 장교로 사역하고 있던 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되어서, 교제해 오다가 그 해 10월 30일에 결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4) 군대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나서 1982년 10월에 결혼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란다.
우리가 결혼할 때에 필자의 계급은 육군 중위 군목이었었고, 아내의 계급은 육군 대위 간호장교였엇다. 그렇게 결혼하자 마자 필자는 독신장교 숙소에서 양평 시내에 방을 하나 구해서 그 곳으로 이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자 마자 필자는 아내에게 말하기를 “주의 종들은 교회에서 주는 것만 가지고 살아가야 하니까, 속히 군대에서 제대를 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말하자, 필자의 아내는 육군 본부에 있는 간호병과장님에게 찾아 가서 본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대해야만 할 것을 강청하여서 허락을 받아, 1983년 3월 말부로 제대를 하게 되었고, 필자는 1983년 7월 말부로 만기 제대를 하였던 것이다. 결혼을 한 이후로 바로 그 이듬해인 1983년 8월에 첫 아들이 출산되게 되었었고, 1985년 8월에는 둘째 아들을 출산하게 되었던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큰 아들은 가족들이 미국에 이민을 올 때에는 12살이었었는데, 이 미국에 들어와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졸업한 후에, 의대에 입학하여서 졸업을 하고 지금은 미국 캘로포니아에서 닥터로서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음을 하나님 앞에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둘째 아들은 휴스턴에서 초등학교, 증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서, 어스틴에서 대학교와 법대를 졸업 한 후에 변호사가 되어서 달라스에서 살면서 유학생 자매와 지난 2014년도에 결혼하여서 두 아들들을 낳게 된 일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아내는 한국에서 1982년 10월에 결혼을 한 후에, 한국에서 필자와 함께 12년 6개월 정도를 살았었고, 미국에 1995년 3월에 들어와서 현재까지 32년째 살고 있으니, 올해인 2026년 10월이 되면 우리는 결혼 기념 44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특별히 제 아내는 이 미국에 들어와서 지난 25년 동안을 많은 일들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20년 3월 말부로 일에서 은퇴를 하게 되어서, 그 후로는 무직으로 가정 일들만을 하면서 필자와 함께 동행하는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 44년 동안을 우리 부부와 함깨 동행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를 드린다. 그 동안 미국에서 32년째 살아 오면서 아내가 피곤함 속에서 운전을 하다가 4번에 걸친 자동차 대형 사고를 일으켜서 그 자동차 모두를 폐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필자도 1번에 걸친 자동차 대형사고로 그 자동차를 페차 시키고 말았었지마는, 우리 부부의 생명을 지켜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를 드린다.
5) 군목 제대 후에 30살의 나이에 장성중앙교회에 부임하여서 11년 동안 목회하도록 도우시며, 함께 해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필자가 군목 제대를 하고 난 후에 1983년 10월부터 1984년 4월까지 약 7개월 동안에는 동암교회(당시 담임목사 한석지 목사, 에장 합동측 총회장을 역임 하신 후에 작고하심)에 부목사로 부임하여서 사역을 하였었다. 부목사로 들어가서 약 3년 동안은 사역을 하려고 생각을 하였으나, 초반부터 하나님계서는 필자에게 특별한 기도 제목을 주셨었는데, “하나님 아버지시여! 부족한 종에게 단독 목회를 할 수 있는 목회지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도록 인도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신속하게 필자의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 당시 관악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예장 합동측 서서울 노회 소속 교회였던 “장성중앙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하게 해 주셨다. 그 때가 바로 1984년 5월의 일이었다. 담임목사 위임식은 서서울노회 주관으로 1984년 9월 15일 주일에 권사님 한 분의 취임식과 함께 치루어졌었다. 그 때의 필자의 나이가 30살이었엇는데, 그 교회에서 30대의 젊은 나이에 필자는 당회를 인도하는 법을 배울 수가 있었고, 제직회를 인도하는 법, 권사님들과 집사님과의 관계, 여전도회를 인도해 나가는 방법, 청년들을 인도해 나가면서 성경공부로 지도해 나가는 방법, 주일학교를 인도하는 법, 설교하는 일, 심방하는 일, 교우들을 상담하는 일, 교회에 어려운 일들이 닥쳤을 때에 기도로 대처해 나가는 방법 등등 많은 것들을 11년 동안 배울 수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너무나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1995년 1월이 되자 필자가 왼쪽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으로 인하여 너무나 통증이 심해서 도저히 목회를 계속할 수가 없는 건강 상태라서, 그 해 3월에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랑하던 교회를 사임을 하고 필자는 가족들과 함께 1995년 3월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미국 텍시스 휴스턴 메디칼 센터에서 3번에 걸친 대 수술을 받을 수가 있었던 일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그 때 당시에 신분을 위해서 수고해 주신 목사님과 제 치료를 위해서 수고해 주신 선배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앞에 감사를 드린다. 아멘! 할렐루야!!!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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