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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욌으니

Writer's picture: hjpastorhjpastor

오늘은 베드로전서 4장 7-11절 말씀을 중심으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는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만물의 미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우리 성도들이 이 떵에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

   첫째로 우리 성도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근신하여서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7절에서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여기 “만물의 마지막”이란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까이 왔으니”란 말은 “가까이 잡아 당긴다”라는 의미를 가진 “엥귀스”에서 유래한 단어임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것은 “임박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베드로 사도는 당시 박해와 핍박을 받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가질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이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 보면, 우리도 얼마든지 주님의 재림의 때가 임박해진 사실들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날마나 전쟁이 그칠 날이 없다. 각 나라마다 기근과 지진과 허리케인과 가난과 토네이도와 폭풍과 강력한 비바람 때문에 많은 곤욕을 치루고 있다. 우리 휴스턴에서만 해도 지난 5월 16일에 있었던 허리케인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번에 7월 8일에 몰아닥친 토네이도 베릴로 인해서 무려 사람들이 24명이나 사망하고 마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쳐도 깜짝 깜짝 놀라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가 있다. 이 모든것들이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무시 무시한 사건들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은 모습들이 바로 우리 주님이 재림해 오실 날이 매우 임박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만물의 마지믹이 가까운 이 시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시급하게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 “정신을 차리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프로네사테”는 “소리”라는 뜻의 “소스”와 “마음”이라는 뜻의 “푸렌"의 합성어인 것이다. 이것은 “올바른 마음”, “침착한 마음”을 뜻하면서, 또한 “근신하여”란 환경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요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잡는 조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이 가까울 수록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뿐만 아니라, 무절제한 생활을 버리고 날마다 깨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58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진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많이 유혹하고 있는 세속주의나, 향락주의나,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인본주의나 이단 주의나 사이비 종파 등에 빠지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잡고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들에 대해서는 먼 훗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큰 상급으로 채워 주실 것을 믿는다.

    둘째로 만물의 마지막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게 되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여기서 “무엇보다도”란 말은 “어떠한 일보다도 사랑을 먼저 할 것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제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성도들끼리 열심으로 사랑하는 일인 것이다. 여기에 “뜨겁게”란 말은 옛날 성경에는 “열심으로”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은 헬라어로 “에크테네”라는 말로서, 이 뜻은 “힘껏 노력하는”, 전심 전력하는”이라는 의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써서 할 사랑은 감정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피차간에 결단을 가지고 행동을 수반하는 “아기페적인” 사랑인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한다면 상대방의 허다한 죄를 덮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파차간에 있는 허물들을 덮어주고, 서로를 세워 주고자 하는 사랑은 죄를 가리우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잠언 10:12절에도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필자가 주의 몸된 교회를 2000년 10월에 개척을 해서 지금까지 24년 째 목회를 해 오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24년 동안을 함께 동고 동락해 온 집사님들이 두 가정이 계시는데, 소 집사님과 윤 집사님의 이 두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에 저희 교회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기도 하고, 여러 어려움들이 있을 때에도 함께 견뎌 오고, 함께 참고서 여기까지 달려오신 두 가정에 대해서 정말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렇게 사랑하는 이 두 가정과 함께 참고 인내하면서 24년 동안 달려 오게 될 때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제 후임으로 이렇게 훌륭하고도 좋은 김 목사님도 적절할 때에 저희 교회로 보내 주신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목회도 사랑으로 해 나갈 때에,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천둥이 친다 할찌라도,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고서 사랑으로 참고 인내하면서 앞을 향하여 달려가게 될 줄로 믿는다.  

   셋째로, 만물의 미자믹이 가까이 왔으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해야 할 줄로 믿는다. 본문 9절에 보면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여기에 “대접하기를”이란 말은 헬라어로 “필록 세노니”라는 말인데, 이것은 “사랑”을 의미하는 필로스와 나그네를 의미하는 “크세노스”의 합성인 것이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보면,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의미로 당시에는 “여관”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니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 방법이었던 것이다. 니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단순히 잠자리만을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고난과 핍박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쫓겨 다니면서 전도 생활을 하는 등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였기에 사도들은 자주 이 덕목에 대해서 언급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2;13절에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히브리서 13:2절에도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조건으로 “원망없이”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넷째로, 만물의 미자믹이 가까이 왔으니 우리는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본문 10절을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입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여기 “은사”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써 매우 다양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들을 주셨다 할찌라도, 그 은사는 서로 비교되거나 또는 자기의 유익과 자랑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들은 바로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주시는 것임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레서 고린도후서 4:7절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나에게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와 있는 대로,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있을 수가 있다. 또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의 은사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하는 은사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가,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은사는 바로 한 성령님이 그 분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시는 그 은사를 가지고, 성령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봉사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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