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필자는 오늘 에베소서 2:1-10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그 때에와 지금의 차이”(The Difference between then and now)라는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여기에서 “그 때에”란 말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기 이전의 상태” 즉 “예수를 믿기 이전의 옛날의 그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지금”이라는 말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내 미음에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 나의 구주로 믿기 시작한 바로 그 때”를 “지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 믿기 이전의 그 때와 예수를 믿게 된 지금과 비교를 하면서, 그 차이점을 분명히 알아서 결코 우리가 예수 믿기 이전의 상태로 후퇴하는 일이 없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그 때에”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첫째로, 그 때에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였으나, 지금은 우리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 예수 믿기 이전의 우리는 타락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모두가 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비참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과거의 삶을 상기 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그들은 한 마디로 “죽음”으로 특징지워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 본문 1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죽었던 ‘이란 말은 우리 신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도덕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던 비참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만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이나 시편에서도 질병이나 죄나 소외감이나 포로 상태에 있는 처참한 삶이나, 적군들의 지배하에 있는 비참한 삶이 바로 “죽음의 영역”에 있는 삶으로 표현되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에서 “허물”이란 것은 문자적으로 “정로에서 떨어지다”라는 의미로, 부주의하여 진리에서부터 떠나 있는 상태나, 잘못되고도 더러운 경향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죄”라고 하는 것은 문자적으로 “과녁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생의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지 못한 모든 악한 행위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에 이 두 가지, 즉 “허물과 죄”는 서로 동의어인 것이다. “허물과 죄”로 번역된 헬라어는 바로 여격으로서, “너희의 허물과 죄를 통해서”라는 의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허물과 죄를 통해서 우리의 누추하고도 너무나 악한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여격은 바로 “죽음의 원인”, “죽음의 도구”, “죽음의 영역”, 그리고 “죽음의 결과”를 나타낸다고 볼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과거에 예수 믿기 이전의 상태가 어떠하였던가? 비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무나도 비참한 상태였다는 말이다. 허물과 죄 때문에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허물과 죄를 통해서 도덕적으로 죽어 있었고,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죽음의 결과는 바로 허 물 뿐이요, 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던 우리들, 영적으로도 죽어 있었고, 도덕적으로도 죽어 있었던 너무나도 처참하고, 너무나도 형편이 없던 우리들, 시체가 쓰려져서 전혀 움직이지 못할 만큼의 매우 형편이 없던 우리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새롭게 살려 주신 것을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5절에 보면, “하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인하여 “새 생명”을 소유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로 인하여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에 대한 “구원”이란 바로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인 바로 “은혜”로 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허물로 죽었던 우리요,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였었으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을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구원”(Salvation)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줄을 확실히 믿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헤에 대하여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둘째로, 그 때에 우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었던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란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는 영임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2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기서 “그 때에”는 바로 예수 믿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그 가운데서 행하여”에서 “행하여”란 “윤리적인 행동이나 삶의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니까 먼저는 그 사람이 “이 세상 풍조를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풍조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게 되면서, 악으로 치닫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풍조는 이기주의요, 개인주의요, 혼합주의 시상이요, 종교 다원주의요, 포스트 모더니즘이요, 자유주의 신학이요, 향락주의, 물질만능주의, 물량주의, 무신론주의 등등 아무튼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만 나가는 것들인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그들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하는 것이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란 인간의 참된 행동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으로, 이것은 바로 “악의 영들”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곧 바로 “사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에 이런 악한 영의 통치 아래에서 살았었다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사단이란 바로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도 예수를 영접하기 이전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운데 행하면서, 이 세상 풍조들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단을 따르던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예수를 믿고 있다 할찌라도, 우리 안에 사단이 추호라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항상 주의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예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6:10-11절에 있는 대로,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베드로전서 5:8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셋째로,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면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여,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 여기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는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던 천성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마땅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 타락한 우리들을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일을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죽어 마땅한 우리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해 주신 그 일을 항상 감사하면서 감격하면서, 구원받은 우리들이 주의 복음을 항상 증거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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