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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창립 24주년을 맞이하면서

부족한 종과 아내가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들어왔던 것은 1995년 1월의 일이었다. 1월에 휴스턴에 들어 왔다가 방 한칸짜리 아파트를 얻어서 아내를 남겨 두고서 3월에 한국에 나가서 지난 11년 동안 시무하던 교회를 시무 사면하고서 다시 휴스턴으로 들어 왔었다. 그 후에 그 해 10월에 두 아들들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무사히 들어 올 수가 있었다. 그 후에는 아파트  방 세칸 짜리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1995년부터 1999년 6월까지는 필자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두 번에 걸쳐 양쪽 고관절에 인공 뼈를 넣는 수술을 받았고, 왼쪽 무릎에 인공 관절을 넣은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는 충현장로교회(당시 담임목사 이은재 목사)에서 교육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건강 회복을 위해서 정진하였던 것이다. 그 후에 건강이 회복이 되자 하나님께서 어스틴에 있는 충현장로교회로 목회지를 정해 주셔서 1999년 7월에 어스틴으로 두 아들들과 함께 이사를 하였던 것이다. 아내는 휴스턴에 있는 우체국에서 일을 하였었고, 온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서 우체국 측에 어스틴으로 발령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일년이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고민 고민 하다가 어스틴에서 목회하던 교회를 사임을 하고 후임자에게 물려 주고서 휴스턴으로 다시 이사를 왔던 때가 바로 2000년 7월 말 경의 일이었다. 필자와 아내와 두 아들들이 일 년 만에 다시 모이게 되니 그때부터 두 아들들이 휴스턴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마음을 잡고서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좋은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필자는 그 해 8월과 9월 두 달 동안 교회 개척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필자가 살던 아파트 부근에 있는 미국 교회에 한인들을 위해서 교회를 렌트해 달라고 하는 편지를 열 통을 써서 열 교회에 보냈던 것이다. 그 열 통의 편지들 중에 아홉 통의 편지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고, 유일하게 한 통의 편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써서 돌아 왔었다. 그 교회가 바로 필자가 교회를 렌트하게 된 세인트 토마스 장로교회였던 것이다. 그 교회의 중진들로부터 쾌히 승락을 받고서 새 믿음장로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 바로 2000년 10월 1일 주일이었던 것이다.               

1)     10년 동안 세인트 토마스 장로교회에서 주일 오후에 예배를 드려옴.

     14100 Memorial Drive에 있는 St. Thomas Presbyterian Church(PCUSA)에서 약 10년 동안 주일 예배를 드렸는데, 그 교회의 본당에서 오전 11시에는 그 교회의 성도들이 주일 예배를 드렸었고, 그 교회의 예배가 다 마친 후에 오후 1시 30분에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주일 예배를 본당에서 드렸었다. 본당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수요 저녁 예배와 토요새벽기도회는 작은 교실에서 드렸었다. 이렇게 무료로 예배를 드려 오면서 필자는 교우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 교회도 매 주일마다 오전에 예배 드릴 수 있는 교회당 장소를 허락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간절히 기도를 드렀던 것이다. 그 당시에 주로 학생들 중심의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몸부림을 치면서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에 드디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10여년 만에 우리 교회에 교회당이 있는 건물을 허락해 주셨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기적이요, 은혜였던 것이다.

2)     14년 동안 교회당이 있는 건물에서 오전에 예배를 드리게 해 주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로 새 믿음장로교회와 교회당 건물이 있던 광명교회가 함께 합병을 하게 되면서, 광명교회 목사는 우리 새믿음장로교회의 부목사가 되고, 부족한 종은 담임목사로 시역을 하게 되면서, 그 교회당도 우리 교회에서 인수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가 2010년 9월 첫주일에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교회에 뱅크로부터 약 13만불 정도의 빚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우리 교회에서 매월 약 1,500불 정도씩 뱅크에 원금과 이자를 지불하였던 것이다. 그러기를 약 7년 동안 잘 감당해 오다가 2017년 11월이 되었을 때에는 뱅크에 빚이 약 6만불 정도 남았었는데,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이 5만불의 건축헌금을 교회에 드렸였고, 또한 교회 재정에서 일 만불을 보태어서, 뱅크에 빚진 것들을 전부 다 갚을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일도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였던 것이다. 교회당이 있는 교회에서 2010년  9월부터 예배를 드려 오면서 주일 예배를 오전 8시 30분에 제1부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오전 11시에는 제 2부 예배를 드릴 수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된 일을 너무나 감사하였던 것이다. 수요일 저녁예배는 저녁 7시에, 토요새벽기도회는 오전 6시 30분에 자유롭게 드려 오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회 중식을 위해서도 김치도 자유롭게 먹을 수가 있고, 된장 찌게도 자유롭게 먹을 수가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9742 Clay Road에 있는 교회로 자리를 옮겼을 때에 우리 교회에 장년들 말고도 청년들이 약 25명 가량 많이 있어서 당시 휴스턴 기독교 교회 연합회 주관으로 실시하던 축구대회에서 2011년, 2012년, 2013년 이렇게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되므로 지금도 우리 교회에 그 우승컵들이 3개가 있고, 또 한번은 체육회에서 실시한 축구대회에서도 우리 교회 청년들이우승을 차지하게 됨으로 그 때에도 우승컵 1개를 받게 되어서, 지금은 모두 4개의 우승컵들을 교회에 보관하고 있으니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 후로는 우리 교회에 청년들이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진학하기도 하고, 한국으로 나가기도 하고, 또 군대에 들어가게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됨으로, 장년들만 남게 되어서 이후로는 장년들과 노년들 중심의 교회가 된 것을 알 수가 있다.

3)     부족한 종의 나이가 70이 되어서 은퇴를 하고, 젊은 종에게 교회를 물려 주기로 결정함.

    2024년 5월 12일 주일에는 우리 교회가 공동의회를 열어서 “이인승 목사 원로 목사 추대의 건”과 “김현진 목사 제2대 담임목사 청빙의 건”을 놓고서 투표를 한 결과, 전 교인들이 모두 이 두 가지 안건에 만장일치로 찬성을 하게 됨으로 오는 11월 10일 주일에는 “교회 창립 24주년 기념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부족한 종을 “원로 목사로 추대하는 추대식”을 갖게 되고, “김현진 목사 제2대 담임목사 취임식”과 ‘이인승 목사 성역 50주년 기념 출판(“나의 인생, 나의 목양 이야기”/2024년 6월, 쿰란 출판사 간) 기념 감사행사”를 함께 갖기로 한 것이다. 이 귀한 행사를 위해서주로 PCA 한인남부노회 노회원들인  달라스에서 목회하는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어스틴에서 목회하는 동역자들과 휴스턴에서 목회하는 여러 동역자들이 이 귀한 행사의 순서들을 맡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다. 교우들 중에는 지금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교우들 뿐만 아니라,  주위에 친분이 있는 여러 동역자들과 교우들이 참석하게 되고, 또한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청년으로 있다가 지금은 뉴욕에서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읗 하고 있는 청년들이 비행기를 타고서 이 귀한 행사에 참석하려고 준비하고 있고, 또한 덴버에서, 달라스에서, 켈리포니아에서 달려오게 될 청년들이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부족한 종은 이제 나이가 70이 되어서 교회를 그 날 은퇴를 하게 되고, 그 이후에는 다시 타이어를 새로 끼고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앞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나갈 것이다. 부족한 종의 후임으로 50살 된 젊은 김현진 목사님이 필자가 섬기던 새 믿음장로교회를 맡아서 열심히 성실하게 목회하며 목양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귀하고 신실하신 주의 종을 우리 교회의 제2대 담임목사로 모시게 된 일도 역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확신한다.                   

   디모데후서 4장 7절--8절에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지난 1974년도 필자의 나이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51년째 선한 싸움을 싸워 왔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또한 나의 달려갈 길을 달려온 것도 역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며, 지금까지 믿음을 지켜온 것도 역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앞으로 남은 생애 속에서도 필자는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진리와 복음을 사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의 달려갈 길을 계속해서 달려가며, 끝까지 죽음의 순간까지 믿음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 이 후로는 우리 주님이 의의 면류관을 부족한 종에게도 예비해 주실 줄로 확신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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