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존경하던 고 박청수 목사님(1942,6,19—2020, 7,21)을 천국으로 보낸 지도 벌써 약 25일이 지나가고 있다. 필자가 박 목사님을 만나게 된 지는 필자가 미국에 들어오던 해인 1995년부터 2020년 지금까지이니 약 25년 동안이었던 같다. 지난 25년 동안 휴스턴에 함께 거주하는 목사로서, 선후배 목회자로서, 동역자로서 교제를 나누며 지내왔던 것이다. 그렇게도 건강하시던 박 목사님이 아까운 나이(78세)에 먼저 가시는 것을 보면서 마음으로 많이 애석한 마음이 들었고,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저렇게 천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히브리서 9:27절에 의하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인생들이 이 땅에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할찌라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100세가 되기 전에 천국으로,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이 분명한 이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지난 7월 24일 오전 10시 30분에 Winford Funeral Home에서 가졌던 고 박청수 목사의 천국환송예배는 코로나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유족들과 휴스턴에서 목회하시는 많은 동역자들과 많은 조객들이 원근 각지에서 참석한 가운데 매우 성대하게 치러진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박 목사님은 1969년부터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해서, 1971년도에 한국 감리교 교단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으시고, 버먼트 제일 연합감리교회에서의 목회 사역을 끝으로 2020년 1월까지 사역들을 감당해 오셨으니, 무려 51년 동안의 성역을 잘 감당하시다가 하나님 나라에 부름을 받아 가신 것이다. 박 목사님은 한국에서 목회 사역을 약 10년 동안 감당해 오셨고, 독일로 건너 가셔서 약 6년 동안을 목회 사역을 하셨고, 미국에는 1984년도에 들어 오셔서 약 35년 동안 목회 사역들을 감당하신 셈니다. 젊은 나이인 27살에 목회 전선에 뛰어 들었다가 78세가 될 때까지 긴긴 51년 동안을 목회 사역을 감당해 오셨으니, 평범한 목사들이 걸어가기에는 매우 어렵고도 힘든 길을 거의 평생동안 넉넉히 감당해 오신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삶을 살다 가신 고 박청수 목사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리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남기고 싶다.
첫째로, 박 목사님이 지난 51년 동안의 목회 사역들을 매우 성실하게 감당해 오신 일을 존경하고 싶다. 필자는 1974년 부터 전도사 사역을 시작하였으니 금년으로 성역 46주년을 맞는 셈이다. 박 목사님의 51년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5년을 부지런히 더 달려가야만 할 것이다. 박 목사님이 한국에서 1969년부터 약 10년 동안 달려 오셨던 목회는 전도사 시절부터 시작하여서 목사로 안수 받고도(1971년) 계속해서 사역을 감당하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겠는가? 그 후로 1979년에 독일로 건너가셔서 약 6년 동안을 독일 교민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감당하셨고, 1984년도에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서 2020년 1월까지 약 35년 동안을 목회 사역들을 감당하였고, 휴스턴 제일연합감리교회에서만 두 번에 걸쳐서 모두 22년 동안 사역을 감당하셨으니,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분의 성실함과 인내함의 결과가 이와 같은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도록 한 것이라 확신한다.
둘째로, 박 목사님은 언제나 온화하고도 포근한 인생을 살아 오신 일을 존경하고 싶다. 필자가 박 목사님을 만날 때마다 그 인상이 언제나 온화한 인상이었고, 포근한 인상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어찌보면 자상한 형님과 같은 느낌이었다. 부족한 필자도 이와 같은 온화한 성격을 닮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다.
셋째로, 박 목사님은 지난 51년 동안의 목회 사역들을 감당해 오시면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외 길로만, 올바른 진리의 길로만 걸어 오셨음을 생각하면서 존경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히브리서 12:1-3절에 의하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일을 생각하라.” 박 목사님은 인내로써 그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면서 믿음의 주인이시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그 동안 열심히 달려 오신 분이시다. 목회 사역을 감당해 가면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거나 인위적으로 기교를 부리면서 목회하는 일은 얼마 가지 못하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더니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꾸준히 열심히 달려간다면, 51년 동안이 아니라, 아니 그 이상의 더 많은 세월 동안도 얼마든지 넉넉하게 달려 갈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동역자들의 목회 생활이 바로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앞으로 5년을 더 달려 간다면 성역 51주년을 맞이할 터인데, 그 이후에라도 우리 하나님이 필자에게 더 힘을 주시고 더 기회를 주신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또 다른 사역들을 찾아서라도 하나님 보기기에 매우 귀하고도 값진 사역들을 감당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넷째로, 박 목사님은 성도들에게는 인자함과 사랑으로 대하시며, 자녀들을 키울 때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기독교 음악인으로 키우신 것을 발견할 수가 있어서 매우 존경스럽다. 물론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는 박의순 사모님의 많은 눈물의 헌신과 희생과 역할이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본다. 박 목사님의 따님은 피아노 전공으로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기독교 피아노 연주자로서 휴스턴에 있는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한 일이요, 아드님은 트럼펫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기독교 트럼펫 연주자로서 어스틴에서 교수로서 사역을 할 수 있으니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무엇보다 지난 번에 박 목사님의 천국 환송 예배에서 따님의 추모사 중에 “평생 동안 묵묵히 목회해 오신 아버님을 마음으로 늘 존경하며, 나 자신도 아버지가 걸어가신 그 복음 전도의 길을 평생 동안 걸어가고 싶다”고 하는 말은 필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한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부름을 받아서 어떻게 신학교에 가게 되고 어떻게 목사 안수를 받게 되는 것도 중요하지마는, 그가 어떻게 목회하다가 죽을 때에 어떠한 모습으로 죽는가는 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목회자들은 실컷 목회를 잘 해 오다가도 말년에 가서는 매우 추하고도 매우 보기에 흉칙한 모습으로 죽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박 목사님은 젊은 27살의 나이에 주의 사역들을 시작해서 78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때묻지 아니하고 신앙의 순결을 지키면서 꾿꾿하고도 정직하게 오직 한 길로만 달려 오셨으니, 주님 나라에서 우리 주님으로부터 분명히 큰 상급을 받으시리라 확신한다.
존경스러운 박 목사님의 목회의 길들을 돌아 보면서 필자도 남아 있는 사역들을 마무리 할 때에 때묻지 아니하고, 믿음의 순결을 끝까지 지키면서, 곱고도 깨끗하게 정직하게 살다가 주님 나라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필자가 그 동안 휴스턴에서만 약 25년 동안을 살아오면서 일곱 분의 목사님들이 천국으로 가시는 길을 주관하거나 옆에서 보아 왔던 적이 있다. 고 육태봉 목사님을 비롯해서, 고 김종일 선교사님, 고 이영태 목사님, 고 김종환 목사님, 고 김호은 목사님, 고 허도성 목사님, 그리고 고 박청수 목사님이 바로 그 분들이시다. 이 분들만 천국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도 역시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날이 곧 나에게도 다가 오게 될 것을 늘 생각하면서 우리의 남은 생애를 주님 앞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목회로, 주님 앞에 헌신적이고도 성실하며 정결하고도 인내하는 진실된 삶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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