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 43주년을 바라보면서
- hjpastor
- Oct 22
- 4 min read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필자가 지금의 아내인 이원자 님을 만나서 결혼을 하였을 때가 바로 1982년 10월 30일의 일이니 올해 10월 30일이 되면 우리는 결혼 기념 43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필자는 오늘 결혼 기념일 43주년을 앞두고서 지난 날들을 회고해 보면서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우리의 결혼 이후 지난 42년 동안의 모든 여정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혼 당시에 필자는 제 20사단의 사령부에 있는 교회를 맡고 있던 육군 군목 중위였었다. 그러니까 제대 날짜 약 1년을 남겨 두고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속에서 청평에 있는 59후송병원에서 간호장교로 일을 하면서 육군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던 아내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1) 한국에서의 13년 동안을 우리를 지켜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결혼을 한 이후에 1983년 7월 말부로 필자가 제대를 하자 마자, 제 아내가 첫 아들을 1983년 8월 14일에 출산하였던 것이다. 둘째 아들은 그로부터 약 2년 후인 1985년 8월 24일에 출산하였다. 이 두 아들들이 이제는 성장하여서 큰 아들은 아직도 싱글로 지내고 있지마는 병원의 의사로서 사역을 하고 있음을 볼 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 아들은 변호사로서 달라스에서 살고 있는데 이미 결혼을 해서 두 아들들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지내었던 결혼 후 13년 동안 군목 생활로 약 1년을 양평에서 지내게 되었었고, 제 아내는 1983년 2월에 제대를 하였고, 필자는 그 해의 7월 말부로 제대를 하게 하신 이버지 하나님께 또한 감사드린다. 군목 제대를 한 이후에 필자가 부목사로 사역하게 된 교회는 바로 고 한석지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동암교회였었다. 그 교회에서 필자는 1983년 10월부터 1984년 4월까지 부목사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1984년 5월부터 1995년 3월까지 약 11년 동안은 노량진에 위치하고 있었던 장성중앙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게 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장성중앙교회는 예장 합동측 서서울 노회 소속이었는데 그 교회를 30대의 젊은 시절에 섬기게 되면서 필자는 그 교회에서 당회를 운영하는 방법으로부터 시작해서, 제직회와 공동의회를 운영하는 방법과 목회자로서 성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 나가야만 할 것인가? 장년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방법과 청년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방법, 성도들과 상담하는 방법, 매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는 일과 주일 예배, 수요 저녁 기도회, 금요 철야 기도회 등을 인도하는 방법들을 충분히 익힐 수가 었었다. 장성중앙교회에서 11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은 그 당시 지도해 오던 사랑하는 청년들 중에서 3명의 목사들이 배출되어서 지금도 그 목사들이 50대의 나이로 예장 합동측 교회들을 섬기고 있는 일이다. 두 청년들은 서울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한 청년은 안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이렇게 이들을 목사로 귀하게 길러 주셔서 예장 합동측 교회에서 신실하게 목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너무나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2) 미국에서의 지난 29년 동안을 지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필자가 미국에 들어오게 된 것은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였던 것이다. 장성중앙교회에서 11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왼쪽 무릎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너무 많이 아파서 교우들의 협조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이 부자연스럽고, 통증이 너무 심해서 필자가 그 교회를 1995년 3월부로 사임을 하고, 바로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들어와서 텍사스 휴스턴에 거주하면서 3번에 걸친 대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양쪽 고관절에 인공 관절을 넣는 수술들과 왼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 등 모두 3번에 걸쳐서 수술을 받고서 필자의 건강이 어느정도 회복이 된 이후에 필자는 1999년 7월에 어스틴 충현장로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해서 약 1년 동안을 어스틴 지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였던 것이다. 그 후에 필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정 사정 때문에 2000년 7월부로 그 교회를 사임을 하고, 2000년 8월 경에 다시 휴스턴 지역으로 이사를 와서 약 2달 동안을 개척교회를 설립하기 위해서 기도로 준비를 한 이후에 2000년 10월 1일 주일에 현재의 새 믿음장로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던 일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린다.
3) 새 믿음장로교회(PCA) 에서 24년 2개월 동안 연속해서 목회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3명의 성도들과 함께 새믿음장로교회를 개척을 한 이후에 약 10년 동안은 미국교회에서 주일 오후 1시 30분에 예배를 드려 왔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희 교회에도 건물을 허락해 주셔서 매 주일마다 오전에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10년 동안을 꾸준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더니, 드디어 10년 만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던 것이다. 2010년 9월 첫 주일부로 9742 Clay Rd에 있는 현재의 교회 건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그 당시 그 교회는 광명교회였었는데, 그 교회와 우리 교회가 합병하기로 합의를 하고서 그 교회의 부채들을 우리 교회가 감당해 나가기로 하였다. 교회 이름은 “새믿음장로교회”로 하기로 하고, 그 교회의 목사는 부목사로 사역하기로 하고, 필자가 담임목사로 사역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7년째였던 2017년 11월에는 본 교회 모 권사님의 건축헌금 5만불과 교회가 가지고 있던 1만불을 보태서 교회의 부채로 남아있던 6만불의 부채들을 모두 다 갚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작년이었던 2024년 11월 10일 주일에는 부족한 종이 70의 나이에 24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해 오던 교회를 은퇴하게 되면서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게 되었고, 현재의 김현진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취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김현진 목사님이 맡으신지 벌써 만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그 동안에 김 목사님 내외분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도 얼마나 신실하고 얼마나 충성스럽게 목양해 오시는 일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4) 은퇴한 이후에도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필자는 지난 1년 동안 은퇴 목사로서 주님의 일들을 사역해 오면서 부족한 종을 초청해 주시는 여러 교회들을 방문해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코리아 월드의 종교 칼럼니스트로서 계속해서 매주마다 목회 칼럼을 쓰게 해 주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큰 아들의 권유로 매주 마다 약 3회씩은 휘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린다. 필자의 아내는 미국에 들어와서 약 25년 동안을 풀 타임으로 열심히 일을 한 이후에 지난 2020년 3월 말부로 일을 그만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제 저희 부부는 앞으로의 모든 일들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면서 영육간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함께 힘쓰면서 사랑하는 자녀손들이 다 잘되기를 위해서 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앞을 향하여 담대하게 전잔해 나가려고 한다. 시편 37:5-6절 말씀대로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는 말씀을 굳게 붙잡고서, 함께 저 천성을 향하여 믿음으로 믿음으로 달려가려고 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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