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감사로 엮어가는 사람들

삶을 감사로 엮어가는 사람들

향유 씨가 쓴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에 보면 이런 내용의 글이 나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다”라는 영국 격언이 있다는 것이다. 감사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귀한 고백이다. 감사는 감사를 낳고, 불평은 불평을 낳는다. 감사가 감사를 낳는 삶의 자리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찬송 작가인 화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3)는 1820년 뉴욕에서 태어났었다. 그녀는 생후 6주가 되었을 때에 눈병을 앓았다고 한다. 그때 마침 마을의 의사가 다른 지역에 가고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녀의 부모는 자기 딸의 눈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사람에게 치료를 맡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식 의학 교육을 받지 않았던 그의 잘못된 시술로  인하여 그녀의 각막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에 그녀는 평생 앞을 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그런 고통이 찾아 왔지만 그녀의 곁에는 믿음의 가족들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녀의 외할머니는 손녀인 그녀의 눈이 되어 주고, 그녀가 믿음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붙잡아 주었다. 그녀는 시력을 잃었지마는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축복의 섭리라고 스스로 고백하였다. 그 후에 그녀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글에 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쓴 찬송시들만 약 9천 편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들 중에도 그녀가 작사한 찬송들이 많이 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새279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새 384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새 540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새288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새 435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새 608장), “주께로 한 걸음씩”(새 532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새 531장),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새498장) 등등의 주옥같은 찬송들이다.

   누군가 그녀에게 “당신이 처한 상황은 절망할 수 밖에 없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이제 조건을 뛰어 넘는 본질적인 감사가 우리의 영혼 속에서 우러나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가장 그리스도인답게 하는 것이 바로 감사인 것이다. 우리가 감사하는 모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세상에 퍼져 나가고, 우리가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감사가 메말랐다면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영적으로 침체되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졌을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불평인 것이다. 삶에서 겪는 일들이 감사의 유무를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감사는 절대 감사, 무조건 감사, 한평생 감사가 되어야 한다. 숨 쉬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감사가 넘치는 그런 삶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11월에 우리가 “Thanksgiving Day”를 곧 맞이하게 된다. 추수감사절을 맞으면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아 왔는지를 살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먼저는 우리가 가정 생활에서부터 진정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었는지를 살펴야만 할 것이다. 필자는 종종 자동차를 타고 운전을 하면서 어떤 차가 갑자기 끼어들기를 하면 당장 기분이 나빠 지면서 나도 모르게 쌍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목사로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가 없다. 밖에서 어떤 기분 나쁜 일을 당하고 나면, 집에 가서 아내에게 나도 모르게 나쁜 소리를 하면서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을 본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심히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는 것임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목사로서 앞으로는 하나님 앞에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감사가 충만한 삶으로 엮어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작자 미상의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고 한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 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버려진 자로서 급급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계획한 일들이 틀어진 것도 감사합니다. 제 교만이 꺾이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이 걱정 거리가 되게 하시고, 아내와 남편이 힘들어질 때도 있게 하시고, 부모와 형제가 짐으로 느껴질 때가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어려움의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인간된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것을 힘들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눈물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믿음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어서 큰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 앞에 바쳐진 종이 되어서 필자를 목사의 반열에 세워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요 계획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군문에서 3년간 군목으로 있을 때에  지금의 사랑스런 아내를 만나게 하심도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감사를 드린다. 결혼을 한 후에 필자의 가정에 두 아들을 주심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기에 하나님 앞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한국에서의 목회 생활 약 15년 동안을 감당하게 하심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감사를 드린다. 필자의 가정을 1995년도에 미국으로 인도해 주셔서 휴스턴에 들어와서 3번의 대 수술과 최근에 또 2번의 수술들을 통해서 건강을 이만큼 유지하게 하심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감사를 드린다. 지금까지 약 24년째 필자와 필자의 아내와 두 아들들과 며느리로 하여금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게 하시고, 자기의 전공 분야에서 열심히 달려 오게 하심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감사를 드린다.       필자로 하여금 지금부터 19년 전에 휴스턴 지역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시작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여기까지 인도하시며, 지켜주시며, 감당케 하시며, 도와 주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부족한 필자로 하여금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시면서, 성경중심의 개혁주의 성향의 보수주의 신학을 따르는 교단을 섬기게 하시며, 또한 노회를 섬기게 하시고, 휴스턴 지역의 교회 연합체인 ‘휴스턴 기독교 교회 연합회’를 섬기게 하시고, 휴스턴 지역의 한인 목사들 간의 친목 단체인 ‘휴스턴 교역자 협의회’를 섬기게 하심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기에 감사를 드린다. 필자가 아내를 만나게 되어서 지난 37년 동안 여기까지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리며, 감사를 드린다. 필자의 삶 속에 이렇게 감사의 고백들을 해야만 할 조건들이 더더욱 많이 있음에  또한 감사를 드릴 뿐이다. 그래서 필자도 시편 100편을 기록한 시인처럼 고백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나의 삶을 감사로 엮어가는 사람들이 필자의 주위에 더욱 더 많아 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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