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기(3) 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즐거움

한국 방문기(3) 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즐거움

   필자가 아내와 함께 한국에 방문한다고 하니 총신대학교 73학번, 7회 졸업생 동창회에서 필자 부부를 환영하기 위해서 7월 18일에 모임을 갖겠다고 연락이 왔다. 인천 송월교회는 필자의 절친한 친구인 박삼열목사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인데, 그 교회에서 모여서 동창들이 담화를 나눈 후에 중국인들의 타운인 동하 마을에 있는 청관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동창들이 1977년 2월에 졸업을 하였으니, 졸업한 이후로 약 42년 만에 함께 만나게 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지난 42년 동안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도 있고, 이미 목회 전선에서 은퇴를 한 친구 목사도 있고, 금년에 은퇴를 앞두고 준비하고 있는 친구 목사도 있고, 현역에서 아직 선교사로서, 목회자로서 열심히 뛰고 있는 친구 목사들도 있는데, 약 20여명의 목사들과 15명 정도의 사모들이 함께 모이게 되었다.  

    포항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 목사가 있는데, 그 친구는 그날 새벽기도회를 마치자 마자 KTX기차를 타고서 광명까지 와서 친구가 라이드해서 왔노라고 말하는데,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자원 유붕래하니, 불역여호아”라.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 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몇 해 전에는 총신 신대원 동문들이 아침에 함께 모여서 필자 부부를 환영해 준 적이 있었는데, 부족한 사람 부부를 환영하기 위해서 친구 목사들이 이렇게까지 베풀어 주는 호의와 정성을 볼 때에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친구 목사 중에는 81세를 먹은 친구가 있는데, 그 목사님은 귀가 잘 안들리는지 얼마나 큰 소리로 말을 하는지 주위의 다른 친구들이 대화를 못할 만큼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친구 목사가 와서 조용 조용히 좀 얘기 하라고 해도 막무 가네다. 한 친구 목사는 김제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목사님은 74세로 이미 은퇴한 목사였다. 그런데 친구 목사 부부들이 여섯 명이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메기 매운탕을 시켜서 막 밥을 먹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내 밥 그릇에 젖가락을 넣는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깜짝 놀라서 왜 그런가 하고 살펴 보았더니, 그 친구 목사의 앞에는 밥 그릇이 놓여 있지 않았으니, 내 밥 그릇에 있는 밥이라도 먹기 위해서 젖가락이 들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사모님께 부탁을 해서 속히 밥 그릇을 그 앞에 놓아 드리도록 조치를 취한 후에야 마음 놓고서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3년 3월부터 학교에서 만나서 함께 공부를 한 친구들이 4년 만인 1977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이어서 신대원을 공부하여 7년 만에 신대원을 졸업하게 되었으니, 이번에 만난 친구들 중에는 4년 동안 만이 아니라, 7년 동안을 함께 공부한 친구들도 있었다. 말하자면 대학 1학년 때 국방부에서 실시한 “군목 후보생 시험”을 함께 보아서 합격을 한 친구들은 대학1학년부터 신학원 3학년 졸업할 때까지 7년 동안을 함께 공부한 친구들인 것이다. 

     그 친구들 중에 지금은 필리핀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성봉환 선교사가 있다. 성 선교사는 필리핀에서 가아대책 선교사로서 열심히 선교를 하고 있는데, 지금도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 적은 금액이지마는 선교 후원금을 보내 드리고 있다. 필자의 친구들 중에는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호주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 주로 한국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또한 태국 선교사로 사역을 하거나, 필리핀 선교사로 사역을 하거나, 브라질에서, 일본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들도 있고, 오랜 기간 동안 감비아에서 선교 사역을 마치고 LA에서 컴 미션 선교 단체를 만들어서 선교사 후보생들을 훈련시켜서 각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친구 목사가 남미비아로 선교를 나갔다가 그 곳에서 교통 사고 후유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일이었다.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그 곳으로 달려 갔었는데,  그 나라에서 선교하다가 젊은 나이에 교통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벌써 오래 전 일이었으나 지금도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이 매우 아프다.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나중에 다시 그 나라로 선교를 가셨다고 하는 얘기만 들은 적이 있다. 작년엔가는 한 친구 목사가 목포 근방에 있는 섬에 가서 열심히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육십대 초반의 나이에 당뇨병의 후유증으로 시름 시름 앓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천국에 간 일이었다. 또 하나 가슴 아팠던 일은 친구 목사의 아들이 갓 결혼을 해서 신혼의 젊은 나이에  아프라카 지역의 선교사로 파송되어서 그 나라에 갔었는데 역시 교통 사고로 인하여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하는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너무나 아팠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지 42년의 세월이 흘렀고, 신학원을 졸업한 지는 벌써 39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으니, 강산이 바뀌어도 3번, 4번이나 바뀌었으니, 그 동안에 별별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 사실이다.  목회하다가 이혼을 한 친구 목사도 있고, 그래서 재혼을 해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교회를 건축하다가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여서 그 길로 죽음을 맞이한 친구도 있었다. 앞으로 필자가 약 6년 반 동안을 더 목회를 하면서, 우리 앞에 무슨 일들이 펼쳐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오직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전폭을 다 맡기고서 앞을 향하여, 주님의 영광과 그 이름을 위하여 달려갈 뿐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시편 119편 153-156절을 묵상해 본다.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목회를 하는 여정들이 모두 다 고난의 연속이다. 나의 하나님이 나의 고난의 때에도, 고통의 때에도, 힘들어 할 때에도 순간 순간 나를 건지시며, 나에게 힘을 주시니 계속해서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목회의 여정 중에 끝까지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이 끝까지 나를 변호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목회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축복임을 분명히 확신한다.  하나님의 양 무리들을 즐거움으로 칠 때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을 확신한다(벧전 5:2-4).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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