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의 삶

사명자의 삶

      어느 신학교에서 졸업하는 학생을 위하여 학위 수여식 및 졸업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부족한 필자에게 설교를 부탁하여서, 그 졸업예배에 필자가 설교를 맡게 되었다. 필자가 오늘 언급하는 “사명자의 삶”이란 이 제목은 그날 필자가 설교한 제목이요, 본문은 디모데전서 4:12-16절로 정하였다. 필자는 신학교에서 약 10여년을 가르쳐 오면서, 강의할 때마다 신학생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사명”에 관한 내용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이건, 신학을 다 졸업하고 목사가 된 주의 종이건, 아니면 졸업을 한 이후에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이건, 아니면 선교지에 가서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이건 간에 주의 종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자기 목숨처럼 귀중히 여겨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주의 종들은 누구든지 사명따라 살고, 사명따라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는 19살의 나이인 1973년도 2월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때에 이렇게 서원하는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에게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사명을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맡기신 이 “복음 전도의 사명”을 제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신실하게 잘 감당하다가 주님 나라에 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서 시작된 신학대학 생활 이후로  46년째 지금까지 달려 오면서 변함없이, 충성스럽게, 신실하게 여기까지 달려오게 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든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린다. 특히 감사한 것은 미국에 들어와서 24년째 여기까지 달려오게 되면서도 제 아내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 왔지마는, 필자는 아내 덕분에,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사역”만을 위해서 달려 오게 된 것을 인하여  정말 감사를 드린다. 

      사명자는 누구든지 우리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디모데전서 4:12절에 보면,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여기 나오는 “연소함”이란 말은 “젊음”을 뜻하는 것으로, 유대사회에서는 군대를 갈만큼 자란 나이에서부터 40세 까지 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이 말로 인하여 디모데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것으로 추측을 하기도 하지마는,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연소함”이란 말은 장로들이나 교인들의 틈 속에서 경륜이 적은 디모데가 상대적으로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경륜이나 연륜 때문에 다른 교인들이나 장로들에게 업신여김  받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 목사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연소함을 행동의 진지함 등으로 잘 보충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명자들 모두는 주님의 사역들을 감당해 나가면서, 부족한 점들을 채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경륜이 적은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항상 존경받는 지도자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사명자는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딤전 4;12). 몇일 전에 휴스턴 기독교 교회 연합회 이단분과위원회 주관으로 “이단 대책 세미나”를 가진 적이 있다. 달라스에서 강사로 오신 모 목사님 한 분이 이단들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면서 기존 교회들이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이 이단들을 퇴치 할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 내용이 신문에 게재가 되고, 그 신문 내용이 페이스 북에 올라가 있으니까 그 밑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는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는 말을 적어 놓은 것을 보고서 필자의 마음에 상당한 가책이 되었던 적이 있다. 당연한 지적이라고 받아 들여야만 했다. 이단들을 퇴치하고, 물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된 우리 사역자들이 올바르고, 진실하게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말”이란 것은 공개적인 연설뿐만 아니라, 사적인 대화까지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행실”이란 것은 다른 사람과 관계되는 우리의 모든 행동들을 모두 다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언급되고 있는 “사랑과 믿음과 정절” 이 세 가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내면적인 성품들이며, 이것들도 결국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된 생활과 항상 연결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사랑”은 말과 행위로 표현이 되는 것이요, “믿음”이란 “사랑”에 근거를 두는 덕목인 것이다. “정절”(purity)의  헬라어 “하그네이아”란 말은 “순결한 양심을 지키다”라는 뜻을 가지는 헬라어 동사인 “하느뉴오” 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래서 이 “정절”은 생활에 있어서 죄가 없는 것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철저한 순결을 지킬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사명자들이 이렇게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철저하게 살아간다면 성도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교회도 칭찬을 받을 것이며, 우리 사회와 나라도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사명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과 연구하는 일과 묵상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며, 이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권하는 일에도, 가르치는 일에도 전력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사명자는 내 생각이나 내 주장이나 내 말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지자와 같은 심령을 가지고 뜨겁게 전해야만 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자기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는 고백을 하고 있는데 우리 사명자들이 이와 같은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명자는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우리의 성숙한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해야만 할 것이다. 디모데전서 4:15절에 보면,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이나 말씀으로 권하는 일이나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는 이 모든 일에 사명자는 전심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필자가 30대에 주의 사역들을 감당할 때에는 젊음과 혈기로 하였지마는, 40대와 50대에 들어와서는 경륜과 연륜으로 겸손함으로 감당할 수가 있었고, 이제 60대에 들어와서는 낮아진 심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주의 사역들을 감당해 오고 있다. 아무튼 젊은 시절에 주의 사역들을 감당하였던 태도나 마음 가짐들이 이제는 더 완전한 성숙함을 행하여 달려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명자들의 성숙한 모습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낼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나이가 들 수록 더 욕심부리는 자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겸손하며, 더 낮아져서 주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성숙함의 모습들이 보여져야만 할 것이다.

     사명자는 죽음의 정점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부지런히 달려 가야만 한다. 사명자들은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에비되었다”(딤후4:7-8)고 하는 신앙고백을 최후에 유언으로 남기고서 천국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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