헹복한 가정 생활에 대하여

헹복한 가정 생활에 대하여

      어느 동네에 두 집이 서로 이웃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집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었고, 한 집은 젊은 부부만 사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가족을 이루고 있는 가정은 항상 화목하여 웃음꽃이 피었는데, 부부만 사는 가정은 항상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젊은 부부는 이웃집의 화목한 모습을 보고서 크나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우리는 둘만 사는데도 매일 싸워하 하고, 아웃집은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데도 저토록 화목한 것일까? 그래서 어느 날 젊은 부부는 과일 한 상자를 사 들고서 이웃 집에 찾아 갔다. 다과를 나누며 그 이유를 집 주인에게 물었다. “댁의 가정은 대가족인데도 웃음 꽃이 떠날 줄을 모르고, 우리는 둘만 사는데도 매일 매일 싸움만 하는데, 선생님 댁이 그렇게 화목하게 지내시는 비결이 있으시면 말씀 좀 해 주시지요!” 

     그러자 이웃집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 네! 그것은 당신네 두 분은 모두 훌륭하시고, 우리 가족은 모두 바보들이기 때문이지요!” 그 말을 들은 부부는 되물었다. “아니 그 말씀이 무슨 뜻이지요?” 그러자 그 집 주인은 말하기를 “오늘 아침에  우리 집에서 있있던 일입니다. 내가 출근을 하다가 잘못해서 물을 엎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는 내 아내에게 내 부주의로 물을 엎질러서 미안하다고 하며 용서를 청했지요. 그랬더니 제 아내는 “아니오!”하면서 내 생각이 모자라 물 그릇을 그곳에 놓아 두었으니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며 오히려 나에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저의 어머니께서는 “아니다,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그것을 보고도 그냥 놓아 두었으니 내가 잘못이다”라고 말하면서 어머니가 우리에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바보가 되려고 하니 싸움을 할 수가 없고, 언제나 화목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 후에 그 젊은 부부는 이웃집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크게 깨닫게 되어서, 그후로는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으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신약 성경 가운데 골로새서 3장 18절에서 21절 사이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한 가정생활의 비결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한 가정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한다고 말한다(18절). 이것은 주 안에서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복종하라”는 말은 영어로는 “submit”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헬라어로는 “휘포탓세스데”로 이것은 중간태로서, “자발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말이다. 바울 사도는 아내들이 남편에게 억지로나 마지 못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인 복종”을 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자발적인 복종은 하나님께서 재정하신 창조 질서의 한 부분인 것이다. 창세기 3:16절에 보면,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한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시는 차원에서 “남편이 자기 아내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한 가정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아내로서 자기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또한 기쁨으로 복종하는 행위가 있어야만 할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한 가정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두번째로는,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아야 만 할 것이다(19절). 바울은 남편에게 긍정적인 측면에서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는 명령을 하고 있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괴롭게 하지 말라”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은 “사랑하라”고 하는 권면의 소극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아내를 짜증나지 않게 하라”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애정보다는 아내의 행복을 위하여 끊임없이 아내를 돌보고, 아내를 아끼며, 아내를 위하여 사랑의 헌신과 봉사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편들이 아내를 위하여 이와 같이 실천하면서 살아 간다면, 그 가정은 틀림없이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세번째로, 자녀로서 모든 일에 부모님에게 순종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20절). 여기 “순종하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파 쿠에테”라는 말인데, 이것은 아내들에게 권면할 때에 사용하였던 “복종하라”는 말, 즉 “휘파탓세스테”에 비해서 강제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휘파쿠에테”는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절대적이며, 지속적인 순종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에게 모든 일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 것이다. 자녀로서 부모님께 모든 일에 대하여 순종하게 될 때에 이 땅에서 잘되고, 뿐만 아니라 장수하는 복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한 가정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네번째로, 부모로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욕해야만 할 것이다(21절). 여기에 “노엽게 한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 인하여 “자녀들을 자극시키지 말라”고 하는 명령인 것이다. 부모는 단순히 자녀들 격노케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만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엡6:4).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 자녀들을 무리한 요구로 자극시켜서, 자녀들을 노엽게 하거나 격노케 하지 말아야 하며, 그래서 그들을 낙심시키는 일이 없어야만 하며,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잘 양육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우리 부모님들에게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한국의 2018년도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18년도 혼인건수가 25만 7,600건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2018년도 이혼건수가 10만 8,700건으로 전년 대비 2.5%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평균 이혼 연령을 보면 남자가 48.3세이고, 여자가 44.8세로 지속적으로 이혼 나이가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혼인 기간이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전체 이혼의 33.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결혼 생활 4년 이하 부부의 이혼이 21.4%로 그 다음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평균 약 11만 건의 이혼하는 부부가 접수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수치는 OECD 국가들 중에 9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혼률이 지속적으로 상승되고 있는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원리대로 실천하여 살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 가정 마다 행복하고도, 축복된 가정 생활로 날마다 승리해 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할랠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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