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을 그리워하며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지난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었고, 5월 12일 주일은 어버이 주일이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게 되면서 살아계신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윤춘병 작사 박재훈 작곡의 “어머님 은혜”란 노래에 보면,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 보다도 넓은 것 같애.”

    필자는 어머님과 아버님 사이에 낳은 4형제들 중에 맞이로 태어났었다. 부모님들은 어렸을 적부터 유독히 큰 아들이라고 필자를 특별히 대우하시며, 사랑해 주셨다. 또한 어렸을 적부터 “너는 하나님께 바친 아들이니 너는 자라서 꼭 목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기억으로는 2살, 3살 때에 집에 다른 분들이 방문을 하시면, 필자가 그 분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서 “주여 믿습니다! 병이 나을 줄로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면서 환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하시는 목사님들을 흉내내곤 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필자는 장남으로 자라면서 당연히 목사가 되어서 주님의 일에 매진할 사람으로 자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필자가 사춘기에 접어 들게 되었고, 부모님이 시키는대로 하고 싶지 않은 반항심이 생기게 되고, 시골 교회의 목사님을 보니 너무 가난하고 너무 어렵게 생활하시면서 성도들로부터 많은 말들을 듣고 있는 것이 매우 싫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통고하기를 “어머니 아버지! 저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차라리 부자 장로가 되어서 장로로 교회를 섬기겠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방황하기를 고등학교 내내  3년 동안 방황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필자를 향한 하나님의 때가 다가오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3년 2월 어느 날 서울 이태원동에 소재한 대성교회를 시무하시던 서기행 목사님께서 필자와 가족들이 섬기시던 시골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오시게 되었다. 그 때는 부흥회가 월요일 밤 부터 시작해서 토요일 새벽까지 부흥회의 기간이었다. 그것도 화,수,목, 금요일에는 새벽기도회, 낮 성경공부, 저녁 부흥회를 하게 되니까 부흥회로 모이는 횟수가 14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첫날 저녁 집회 시간부터 필자에게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이 크신 은혜를 부어주셨다. 첫날 저녁 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고,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며, 찬송을 부를 때에 강사 목사님과 함께 회중들이 찬송을 부르게 되었는데, 그 곡은 바로 새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이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 주시고, 내 추함을 곧 씻어 주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1절부터 5절까지를 부르면서 필자의 눈에서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면서, 필자의 죄들을 안고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동안에 부모님께 반항하였던 죄, 동생들에게 함부로 대하였던 죄, 교만한 마음을 가졌던 죄, 게으르고 나태하였던 죄, 음란한 생각을 품었던 죄 등등 낱낱이 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서원기도까지 드리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부족한 제가 주님의 뜻이라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주의 종이 되어서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헌신하며 충성하다가 주님 나라에 가겠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토요일 새벽이면 마지막 집회이기에 금요일 저녁에는 시골 교회에서 톱밥 난로 주위에 모여서  13-4명의 성도들이 함께 철야를 하면서, 기도하기도 하고, 찬송도 부르고, 돌아가면서 간증하는 시간도 가지면서 철야를 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 때 간증 시간에 필자의 차례가 되었을 때에 필자가 이번 집회에 은혜받은 것을 간증하면서,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이니 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하니 거기에 함께 하시던 부모님을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너무 좋다고 손뼉을 치시면서, 저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도 해 주셨다. 

   그 길로 필자는 강사 목사님이 토요일 집회를 마치고, 김제에서 전주로 가셔서 고속 버스를 타시고서 서울로 올라가실 때에 그 버스에 함께 몸을 싣고서 서울로 향하여 갔던 것이다. 서울에 올라가서 외삼촌 집에 기거하면서 총신대학 시험 볼 준비를 하고 시험을 보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입학 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 7년 연속으로 총신대학과 총신 신대원을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에 대학 1학년 때에 국방부에서 실시하는 군목 후보생 시험을 보았었는데, 그 시험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하게 되니, 신학교를 다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에야 중위 계급장을 달고서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평에 있는 육군 제20사단에서 군목으로 근무하였던 것이다. 

 대학과 신학교 7년 동안을 시골 교회에 부흥회 강사 목사님으로 오셨던 서기행 목사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대학 2학년때부터 교육 전도사로 임명해 주셔서 그 때부터 교역자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유치부 주일학교부터, 유초등부 주일하교, 중고등부 등을 맡아서 6년 동안을 교역자 생활을 하다가 졸업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교역자 생활이 금년으로 45년째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면서, 필자를 위해서 뒤에서 눈물로 끊임없이 기도해 주신 어머님의 은혜요, 지난 2008년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가신 아버님의 은혜인 것이다. 필자의 어머님은 지금 88세로 김제 노인아파트에 기거하시면서 교회 생활을 하고 계신다. 어머님의 은헤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머나먼 미국 땅에 살지마는 매 2년마다 어머님을 뵈러 한국에 방문하고 있다. 금년에도 필자와 아내가7월에 다녀오려고 계획을 하고 있다. 살아 계실제 어머님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뵙기를 원한다. 88세의 노구이심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 4형제들, 두 명의 목사들과 두 명의 사업가인 아들들을 위해, 9명의 손주들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고 계신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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