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겪은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 기간에 (1)

주님이 겪은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 기간에 (1)

지난 3월 6일은 Ash Wednesday로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올 2019년은 3월6일—4월 20일까지가 주일을 뺀 40일 기간으로 교회력으로 “사순절”이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Lent(렌트)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인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이라는 뜻을 갖는 명칭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테살코스테”란 말을 따라서 “사순절”(四旬節)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부활주일(금년에는 4월 21일 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하여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고 깊이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보내고자 기도 생활과 전도 생활에 더욱 더 열심을 다하는 절기인 것이다.

    40이란 수는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일, 40일간 시내산에서 모세가 금식함으로 기도하며, 십계명의 두 돌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일,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생활, 예수의 부활에서 승천하시기 까지의 40일 등과 같이 성경에 여러 번 고난과 갱신의 상징적인 기간으로 등장하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있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그저 무의미하게 아무렇게나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 사순절의 40일간을 먼저는 죄인인 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신 사건에 담긴 구속사적 의의를 살펴보면서, 나 자신의 신앙을 재 각성하는 기간으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느혜미야 9:1–8절에 의하면, 학사 에스라가 율법책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기를 시작함으로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초막절을 지켰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 유다 백성들이 2일이 지난 7월 24일에 또 다시 모였던 것이다. 이들이 왜 모였던가? 백성들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였기 때문이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제 막 일어난 영적인 각성이 일회적인 사건이나 한때의 흥분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들의 삶 가운데 계속해서 남아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유다 백성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자세를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으로 원하셨던 것은 바로 “신앙의 회복”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과 목회자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영적 각성이 일어났는지를 함께 살펴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도 이번 사순절 기간에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나며, “영적 신앙의 회복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영적 대 각성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함께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그달 스무 나흗날”은 절기와는 상관없이 특별히 그들이 회개를 하기 위해 모인 날이었다.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모였다고 되어 있다. 그들은 모여서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티끌을 뒤집어 쓰고, 3시간이나(낮 사분의 일)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금식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자신을 전폭적으로 헌신하는 의미인 것이다. 그들이 굵은 베를 입었다는 것은 마음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티끌이나 재를 머리에 뒤집어 썼다는 것은 진심으로 회개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과 영적인 빈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자신의 죄악 됨을 인하여 매우 슬퍼하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고서,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대로 그냥 나가다가는 그대로 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정신을 차려서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와 세습운동과 뇌물 범죄, 황금만능주의, 숫자에 너무 연연하는 악한 마음, 분열주의, 혼합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사상으로 가득찬 악한 모습들을 철저히 회개해야만 한다.  한국교회가 올바르게 영적 회복을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먼저 이러한 회개의 대 운동이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다.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두번째로,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온 성도들이 “다함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운동”이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느혜미야 8장과 9장에 나타난 유다 백성들은 말씀 앞에서 새롭게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성벽 공사와 인구 조사를 마치면서 그들이 성공에 도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8:1절에 의하면 백성들이 먼저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 율법을 낭독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교회에서 지도자들의 리더쉽이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성도들의 영적 갈급함이 중요한 것이다. 성도가 말씀듣기를 사모하는 교회에 희망이 있는 줄로 믿는다. 우리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말씀대로 행동하며 살아가는데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두 부복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히브리서  4:12).

      이번 사순절 기간에 우리 한국 교회 안에 이렇게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나게 되어서 다함께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다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됨으로 인하여 대 변화의 역사와 대 개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면 참 좋겠다고 하는 생각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분명히 사랑하시기에 이렇게 실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 주간에는 한 번 더 시간을 내어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말하려고 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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