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따라 사는 사람들

사명 따라 사는 사람들

바울의 신앙 고백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성구가 바로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이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 목사들의 삶을 바로 볼 때에 몇 가지 종류의 목사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는 목사로서의 맡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온갖 어려움들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끝까지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해 나가는 목사들이 있다. 또 하나는 목사로서 임직을 맡았지마는 잠시 동안 교회를 맡아서 목회를 하다가 도중에 무슨 어려움에 부닥쳐서 그 사역을 그만두고 자기의 직장이나 자기의 사업에 몰두하는 목사들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교회를 맡아서 목회를 하면서도 교회로부터 적절한 사례가 지급되지 못하므로 다른 잡을 가지고 일을 한다거나 사업을 운영하면서 교회의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목회자도 있는 것을 본다.   

     바울도 물론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 때는 장막 깁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기도 한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어쨋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면 교회를 맡아서 목회를 한다거나 아니면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사역들을 신실하게 감당하면서 묵묵히 인내함으로 끝까지 가야만 할 것이다.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 S 집사는 우리 교회의 역사와 함께 현재 20년째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섬기고 있고, C 집사 부부는 19년째 교회를 함께 섬기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주님의 교회를 목회해 나가면서 때로는 성도들과의 관계 문제로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매우 어려운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이 집사님들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여지껏 변함없이 필자와 함께 걸어온 그 인내함과 그 신실함을 바라보면서,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들도 기도함으로 이겨 낼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기곤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청년 의사인 안수현은 인턴과 레지던트로서 바쁜 생활을 하는 중에도 일과를 마친 밤 늦은 시간에 병실 환자들을 만나서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고 한다. 만남의 대상은 주로 어린이 환자와 그 보호자나, 중년과 노년 환자들이었다고 한다.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이 초기 환자, 말기 환자 두루 두로 만났다고 한다. 만남의 내용은 병에 관한 것을 넘어서 인생 전반에 관한 것들이었다. 심신이 지치고 믿음이 약한 환자들에게  때로는 위로와 용기를 주기도 하고, 교회를 쉬고 있는 분들에게 다시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하기도 하고,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을 전하였다고 한다. 때로는 환자의 집까지 찾아가서 생일 축하를 해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김없이 찬양 테이프나 적절한 책자들을 선물하면서, 인격적이고 영적인 교류를 지속하였다고 한다. 그 청년이 레지던트 1년차 때 돌봤던 한 난소암 말기 할머니는 “이 어린 의사가 날 살렸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를 칭찬하고 다녔다고 한다. 실수나 저지르지 않으면 다행인 초보 의사인 그가 환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얼마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청년 의사는 헨리 나우엔의 말대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 주고, 격려의 말을 해 주며, 그들을 안아 주었던 것이다. 환자들의 손을 꼭 잡아 주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주거나, 더 이상 도울 능력이 없다는 말이라도 해 주었다고 한다. 그 청년은 “듣는 귀” 하나가 더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주신 “마음의 귀”였던 것이다. 그 귀는 순하고, 한없이 따뜻하였다. 그 청년은 일과가 다 끝난 후에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잠들어 있는 환자들의 머리 맡에 서서 충심으로 병이 나아서 살아 나기를 위해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정성스런 행동들이 환자들을일으키는 기적을 낳았다고 한다. 그 청년은 점점 더 좋은 의사가 되어 갔다는 것이다. 의사란 환자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진정한 “번쩍임”(Flesh)을 경험해야 하고, 그 신성한 빛 가운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다는 폴 트루니에(Paul Tournier)의 말을 그는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명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오슬러(William Osler)는 “훌륭한 의사는 병을 치료하지만, 위대한 의사는환자를 치료한다”고 하였다. 그 청년 안수현 의사가 내리는 처방은 누가 보아도 환자를 치료하는 명약이었다. 흔히 Cure 나 Treat 란 말은 치료를 의미하고, 치유는 Heal 이라고 표현한다. 청년 안수현은 육신을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인격과 영혼까지도 치유하였던 것이다. 즉 전인 치유(Holistic Healing)에 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청년 의사인 안수현은 한 마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알고,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그 사명을 실천에 옮겼던 사람이었다. 쳥년 안수현은 의사라는 직업에 더해 그가 다니는 교회 대학부에서 성경공부를 지도하는 리더였으며, 교회 의료 선교부에서 활동하였고, CCM을 소개하는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예흔” 예배 공동체의 리더이자 클레식 음악 해설가였다고 한다. 또한 신앙 서적을 소개하는 칼럼도 썼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청년 의사를 바라볼 때에 필자가 심히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필자가 지난 40여년의 목회 사역들을 감당해 오면서 필자 자신이 얼마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목회에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인내함과 진실함과 성숙한 주님의 인격을 닮아서 성도들을 지성으로 돌보아 왔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앞으로 남은 사역들을 감당해 나갈 때에 결코 우쭐한다거나 교만에 빠지지 아니하고, 더욱  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따라 살아가는 목회자가 되기를 위해 부단히 최선을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 4장 7절로 8절에서 고백한 내용대로 필자도 이렇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에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다 감당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부족함을 깨닫고, 더 충실하게 사명 따라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목회자가 되고싶다. 인생은 살아 있는 동안은 마침표가 아니라, 잠시 쉬는 쉼표만 있을 뿐이요, 지속적으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정진하는 것이다. 사명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십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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