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감사 기도를 배웁시다

바울의 감사 기도를 배웁시다

2019년 새 해를 맞이하여 오늘은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감사 기도를 배우고자 한다. 골로새서는 당시에 이단이 성행하였던 골로새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바울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바울은 본 서신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을 때에 이 세상의 거짓된 지식과 가치관을 이길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영적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초대 교회 당시보다도 더 어둡고, 더 부정적임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 교회는 외부적으로 골로새 교회가 직면하였던 위험들보다 더 많은 이단과 세속 사상의 도전들을 받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도 초대 교회보다도 더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제시한 말씀, 즉 예수님께 깊게 뿌리를 내리며, 세움을 입어서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는 생활 태도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더욱 더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골로새서 1:1-6절에 보면,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다(3절). 그러면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대하여 감사하는 기도의 내용들은 무엇이었는가? 첫째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그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바울은 직접 골로새 교회를 방문해 보지 못하였지마는, 에바브라를 통하여 이야기를 들어서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들의 믿음에 관한 것이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믿음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바른 믿음이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도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랑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충만하다고 하는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이런 믿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던 것이다. 또한 바울이 감사한 것은 골로새 교인들의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성도들간의 폐쇄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도들 간의 사랑이 더욱 긴밀하다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때에 이 사랑은 온 인류의 사랑이 되고야 말 것이다. 바울은 그들의 이와 같은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의 소식을 들을 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던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바로 이와같이 골로새 교인들처럼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 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사랑을 공급해 주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두번째로,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감사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소망이라는 것은 앞에 나오는 믿음과 사랑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 “소망” 때문에 믿음과 사랑이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소망은 하늘에 대한 소망인 것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게 된 결과로 하늘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보상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 보상이란 하늘의 축복에 대한 소망을 말하는 것이다. 몇일 전에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여집사님 한 분이 87세를 일기로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아 가셨다. 필자는 그 집사님이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아내와 함께 오후에 병원을 방문하여서 그 집사님께 하늘에 소망을 삼고 살 것과 굳센 믿음으로 살 것을 말씀드리고, 간절한 기도를 해 드리고서 돌아 왔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저녁 11시에 소천하셨다고 하는 소식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너무나 기묘막측하다고 하는 사실을 께달았다. 하나님은 그 여집사님의 천국 가실 것을 이미 다 아시고, 필자와 아내의 발걸음을 그 전날 병원으로 향하도록 역사하셨던 것이다. 우리 모두 골로새 교회 성도들처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연연하지 말고, 천국만을 사모하면서 그리고 천국의 상급들을 간절히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세번째로, 바울은 그들이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이란 같은 의미의 말씀인 것이다. “진리”곧 “복음”은 사람들을 하늘의 소망에로 인도하며,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롬10:17). 또한 복음의 진리는 참다운 가르침과 사이비 교훈을 구별해 주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며, 분명하게 안다면 이단의 꾀임에 결코 넘어가지 않을 것이요, 사이비 종파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현대 교인들의 가장 큰 취약점은 참 복음을 바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분명하게 분별하며, 복음의 진리를 확실하게 아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네번째로,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그들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나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복음이 열매를 맺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은 각각 복음의 내적 활동과 외적 팽창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이 동사, 즉 “열매를 맺는다”와 “자라 난다”라는 두 동사가 현재 중간태 분사로 되어 있는 것은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복음의 역동적인 활동을 암시하는 것이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내적으로 열매를 맺고, 외적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으로 인하여서 감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골로새 교인들과 같이 지속적이고도 끊임없이 복음을 통하여 날마다 열매를 맺어 자라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온전한 믿음을 간직하며,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베푸는 삶의 모습이 보여져야 만 할 것이다. 또한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듣고, 복음을 알고, 복음을 깨닫는 일에,  그리고 복음대로 실천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지속적으로 또한 끊임없이 복음 안에서 열매를 맺고, 지속적으로 자라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특별히 우리 한국 교회가 복음 안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나며, 성장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될 때에 우리 한국 교회에 참 소망이 생기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복음의 능력과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통한 남북 통일의 축복을 이루게 되는 영광스러운 그 날이 곧 우리에게 다가오고야 말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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