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는 사회

서로 사랑하는 사회

우리 휴스턴 한인 사회에서 금번에 “통합 한인회”를 구성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다. 과거에 KCC라고 하는 단체와 한인회와 한인학교 등 3개의 기관들이 마음을 합하여서
하나의 “통합 한인회”를 이루게 된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 우리 기독교 교계도 이것을 본받아서, 약
65개의 모든 교회들이 휴스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서로 사랑함으로
본을 보인다면 참 좋겠다고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은퇴하신 목사님들을 위한 사랑의 공동체로
주님의 몸된 “은목교회”를 창립하는 일이나 또는 우리 한인 어르신들의 남은 여생의 평안한
보금자리 마련을 위하여 교계가 힘을 합하여서 “실버 빌리지” 등을 건설한다면 우리 한인들의
다른 기관들에게 큰 모범을 보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본다.
요한복음 13:34-35절에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의 배경은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집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잠시 후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는 이별 직전에 갖는 마지막 만찬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별 직전이나
죽음 직전에는 가장 중요한 말이나 부탁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상황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남기신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런데 주님의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명령 앞에 “새 계명”을 준다고
하는 단서를 붙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새 계명”을 준다고 하셨을까? 사실
이 “사랑하라”고 하는 계명은 이미 구약의 율법에 있던 말씀이었다. 레위기 19:18절 말씀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신약에 와서도 예수님은 구약을 인용하여 사랑을 명하신 적이
있었다. 마태복음 22:37-40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구약의 율법을 요약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최후 만찬의 장면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율법에서 이미 말하는 것
같이”라든가, 또는 “내가 전에 말하였던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하라”고 명령을 하시면서 이 계명은 분명히 새로운
계명, 즉 “새 계명”이며, 그러므로 구약의 계명과는 구분되고 있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주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왜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주님은 “그의 계명”이라고 불렀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요한일서
3:23절에 의하면,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그가 우리에게
주신 게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계명은 “새 계명”(New

Command) 또는 “그의 계명”(his Command)이라고 말할까? 우리는 34절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단서가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으로
만드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전의 사랑의 계명과는 구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단서 때문에 주님의 “사랑하라”는 계명은 바로 “새 계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5:12-17절에서도 주님은 구체적으로 이 새 계명을 설명해 주시고 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다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셔서 밤새도록 물고기 잡는 일에 실패하였던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단독으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던 적이 있다. 주님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또한 우리의 이웃들도 당연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 영국인이 요크셔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해안의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서 불쑥 나와 있었다. 어느 날 이 영국인은 자기 딸을 데리고 그 바위 꼭대기에
올랐다고 한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에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야! 위를 올려다 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번에는 저 아래를 내려다 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춰지는 바다를 내려다
보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내 딸 도르시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도 아름다운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란다.” 이 아버지의 말을 들은 딸 도르시는 자기 아버지를 향하여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군요!!” 라고 똑똑히 말하였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기 딸의 이 말을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들은 이와 같이 높고도, 깊고도, 넓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이웃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만 한다. 필자가 요즈음 약 2 주간
동안 우리 집의 에어컨이 고장나서 2주간 동안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잠을 잔 적이 있었다. 삶의
페턴이 바뀌고 많이 불편하였다. 그러면서 작년 8월 27일에 하비 피해로 인하여서 1년이 넘도록
아직도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한 분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작년에
허리케인 피해를 입고서 지금까지도 아들 집에 더부살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필자가
2주 동안의 에어컨 고장을 통하여 삶의 불편을 느끼게 되면서 하비로 인하여 지금까지 어려움과
불편함과 힘든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분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따뜻한 식사라도 한끼 대접하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
휴스턴의 한인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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