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능력

말씀의 능력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신약시대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이미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이 함께 사역을 하셨던 것이다. 그
중에 성부 하나님은 모든 천지창조를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집행하셨으며, 성자 예수님은
천지창조 때에 말씀으로 사역을 하셨고, 천지 창조 때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그 때에 하나님의 성령은 수면 위에 직접 운행하셨던 것이다(창1:2). 사도 요한은 이 삼위
일체 중에서 바로 성자 예수님을 “말씀”으로 해석하여서 그 “말씀”이 태초에 계셨고, 이 “말씀”이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래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태초에 처음부터 말씀이 있었으며, 이 말씀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이
말씀의 능력은 곧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2-5절에
보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기독교는 시초부터 말씀의 능력으로 시작된 신비한
종교인 것이다. 요한복음 1:13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능력의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을 우리는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곧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위대한 설교자였던 D.L 무디가 거듭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 것을 서약하고서 생활을
했는데도 그는 늘 넘어졌다고 한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무디는 산으로 들어가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기도 중에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맛보았던 것이다. 하늘의 신기한 복들이
자기 심령에 물밀 듯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아! 이제 나는 됐다!”라는 생각을 하고서 그가 산을
내려와 살았지만 그 큰 은혜가 한 달도 가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가 유명한 부흥 목사님으로부터
은헤를 받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서 그가 부흥 집회들을 쫓아 다니기도 하였지마는 역시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무디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나는 화인 맞은 양심인가 보다.
길가의 마음처럼 씨가 자라지 못하는 마음인가 보다”라고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혐오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성경 말씀을 읽다가 로마서 10:17절 말씀이 그에게 확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 후로 무디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기 시작했고,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부터 무디는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전 미국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말씀의 능력은 우리를 변화시키며, 죄로부터 승리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시편 19:7-11절에 의하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우리는 시편 19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그 효력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로마서 1:16절에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이 세상 그 어디에 있겠는가? 성경 외에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죄인을 변화시키겠는가? 지식이 그렇게 하겠는가? 아니면 과학이 그렇게 하겠는가?
아니면 철학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성경 만이(Sola Scriptura) 사람을 변화시실 수가 있고,
그 성경은 지금도 죄인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고, 복음을 받은
사람들을 어찌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있겠는가?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3년 2월
어느 날 필자의 가족들이 함께 섬기고 있던 시골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하였다가 강사 목사님이
증거하신 말씀들 중에 출애굽기 3장 1절-12절을 중심으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필자의 인생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큰 은혜를 받고, 그 받은
은혜에 크게 감격하여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죄를 안고 화개하고 통회 자복하였으며, 주의 종이
되어서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일평생 동안 복음만을 전하기로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체험을
하였던 것이다. 그 길로 필자는 신학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신학원을 졸업한 후에 1980년 2월
25일에 목사가 되었다. 결국 필자를 변화시킨 것은 출애굽기 3장에 있는 호렙산의 불에 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모세는 그 때에 교만의 신발을
벗고, 자기 경험의 신발도 벗고, 자기 혈기의 신발과 자기 불신의 신발을 모두 벗고서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서, 그 거룩한 부르심에 겸허하게 순종함으로 지팡이 하나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고서 애굽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오늘의 현대교회들이 주로 교회 안에 훌륭한 프로그램을 가동시켜서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하는
것을 본다. 아니면 인위적인 여러가지의 방법들을 동원하여서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되는
것이다(슥4:6). 어떤 인간의 기교나 방법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교회가
성장하며, 부흥함을 확신한다(마8:8, 눅7:7). 오늘도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리게
된다(시19:7).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한다(시19:7).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시19:8).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눈을 뜨게 한다(시19:8). 교회 교회들마다
목회자도,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만을 믿고서 그 말씀 만을 붙잡고 전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과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는다. 말씀의 능력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존재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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