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우리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에 완전히 변화되어서 바울이란 이름으로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는 주님 앞에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며, 주님이 십자가 지는 일을 극구 반대하며 만류하던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받고 변화되어서 일평생 동안 주님의 복음 만을 위해서 살다가 그도 역시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평양의 유명한 깡패 김익두가 변하여 예수 믿고 목사가 되어서 복음 증거하는 일과 부흥회를 인도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허랑 방탕아 어거스틴이 변하여서 예수 믿고 기독교의 교리의 초석을 이루는 훌륭한 초대 교부가 되었다. 필자가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만 해도 매우 혈기가 등등하고, 고집도 세며, 교만하고, 화도 잘내며,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성격이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동안 36년 동안의 긴긴 세월 속에서 시시 때때로 역사하시고, 훈계하시고,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고, 도우셔서 많은 변화들을 가져오게 하셨다. 물론 아직도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성도를 변화시키시는 대가이시다. 로마서 12;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멸하도록 하라.” 성도로서 또는 목회자로서 변화가 없다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쓴 로마서에서 먼저는 성도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세대는 무척이나 무서운 악으로 날마다 치닫고 있다. 혼합주의와 종교다원주의와 자유주의와 편리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와 햘락주의로 온 세계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몇일 전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열렸던 퀴어 축제는 인간으로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음란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이 타락하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말을 사용한다. “인면 수심”애 대한 설명을 사전에서 찾아 보니까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과 다름없는 사람, 흉폭하고 잔인한 사람의 비유”라고 되어 있다. 몇일 전에 나이제리아에서는 이슬람 마을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이유로 나이제리아 목사 한 분과 남자 성도 한 분, 여자 성도 한 분, 이렇게 3분을 인민재판하듯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 세워 놓고서 이 분들을 몽둥이로 구타하고, 마구잡이로 폭행하고, 그리고 나중에는 그 분들 주위에 나무들을 쌓아 놓고서 생으로 불태워서 죽이는 끔찍한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잔인한 마음이 인간에게서 나올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차마 눈을 뜨고서는 볼 수가  없는 처참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타락하고, 아무리 흉폭하고, 잔인하다 할찌라도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임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변화될 수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이요나”라는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40 대 초반까지 약 30여년 동안 “게이”로서의 비참한 생활을 하였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불교 신자였던 그의 어머니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40대 초반에 예수 그리스도를 개별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동안의 비참한 게이로서의 모든 생활들을 모두 정리하고서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 후에 그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서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된 이후에 그는 한국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위해 앞장을 서면서 지금도 67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갈보리 체플 서울교회를 목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변활 수 있고, 너도 변할 수 있고, 우리 모두가 변할 수가 있다. 로마서에 있는대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얼마든지 변화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새로워지려면 반드시 거기에 성령님이 역사해야만 한다. 성령님의 역사로 인하여 인간의 마음이 새로워 질 때에 인간이 얼마든지 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성도도 변할 수 있고, 목회자도 변할 수 있고, 일반 사람들도 얼마든지 변할 수가 있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변화되어만 한다. 죽는 순간까지 꾸준히 변화되어야만 한다. 교만함이 변하여 겸손함으로, 게으름이 변하여 부지런함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남을 비판하며, 평가하던 마음이 변하여 남을 칭찬하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남을 미워하며 증오하던 마음이 변하여 남을 사랑하며, 남을 아껴주는 마음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이 변화를 받아 예수를 믿어야만 한다. 이 변화는 성령님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실 때에만 가능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날마다 변화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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