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바라보면서

부활절을 바라보면서

   “사순절”(Lent)이라 함은 부활절 전 40일 간 금욕으로 참회하는 기간을 가리킨다. 사순절은 4세기 초에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준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준비 기간을 정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논쟁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몇 차례의 수정 끝에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서 40일로 정해졌다고 한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란 머리에 재를 뿌리며 회개하고 이마에 재를 발라서 십자가를 그리는 날을 뜻한다고 한다. 재를 사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도 회개와 슬픔의 표시로 자신의 몸에 재를 바르거나 뿌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재의 수요일”을 지키는 풍습 역시 자리를 잡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래고리 1세의 명령 이후에도 상징적인 의미만 있었넌 재의 수요일은 1091년에 열린 베네벤토(Benevento) 공의회에서 교황 우리바노 2세(1008—1099 재위)의 명으로 완전한 하나의 공식 절차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까지의 “사순절”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이것은 천주교의 풍습인데 개신교회가 왜 이것을 따르느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주교의 풍습들은 무조건 다 나쁘고 성경에 맞지 않으니, 천주교의 풍습들은 무조건 다 버려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필자는 찬동하지 않는다. 필자는 성경에 비추어 볼 때에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개혁 교회들이라 할찌라도 그것을 받아 들여서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사순절이나 부활절 절기가 성경적으로 볼 때에 합당하다고 여겨진다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 들여서 우리의 경건 생활에 사용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서 사순절이나 부활절의 기간이나 또는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논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단지 오늘은 올 4월 4일 주일인 부활절을 앞두고서 우리 성도들이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부활절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

부활절을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는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신앙으로 무장해야만 할 것이다.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성경의 역사 학자들이 인정하고 성경이 주장하는 6가지의 사실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첫째 사실은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고 하는 사실이다. 둘째 사실은 예수님은 죽은 후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다고 하는 것이다. 셋째 사실은 예수님의 시체가 놓여 있던 무덤이 비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이다(마28:5-6). 네번째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으며 그 믿음 때문에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다섯번째 사실은 예수님에 적대적이었던 사람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으며, 그 믿음 때문에 목숨 걸고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마지막 여섯 번째 사실은 1세기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부흥하였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 여섯 번째 펙트는 사실상 모든 역사 학자들이 인정하는 역사적인 사실인 것이다. 저명한 신약 학자인 N. T Wright는 말하기를 “역사학자로써 예수님이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지 않았다면, 초기 기독교의 부흥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부흥은 불가능했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것은 위에 있는 모든 펙트들의 증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을 앞두고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자들로 완전히 변화되어야만 할 것이다.     

 두번째로 부활절을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담대하고도 확신있게 그리고 열심히 다른 세상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는 신앙 생활을 해야만 할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 의하면, “이를위하여너희가부르심을받았으니, 그리스도도너희를위하여고난을받으사너희에게본을끼쳐자취를따라오게하려하셨느니라.” 예수님과 바라새인들의 차이점은 많이 있지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언행의 일치와 불일치였던 것이다. 바래새인들은 겉으로는 무척아니 경건해 보였지만 속은 썩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친 교훈과 100프로 일치되는 삶을 사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삶에서 그 분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죄악된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자연히 권위가 있는 것이다. 권위있는 가르침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에수님처럼 행동으로 본을 보이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요한복음 13:15절에 보면, “내가너희에게행한같이너희도행하게하려하여본을보였노라.”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성도라면 자연스럽게 주님의 아름다운 삶을 본받아서 살아가므로 우리의 예수님을 닮은 모범적인 삶을 보고서 다른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세번째로 부활절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몸으로 부활하여서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을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0-24절에 보면, “그러나이제그리스도께서죽은가운데서다시살아나사잠자는자들의열매가되셨도다. 사망이사람으로말미암았으니죽은자의부활도사라믕로말미암는도다. 아담안에서모든사람이죽은같이그리스도안에서모든사람이삶을얻으리라. 그러나각각자기차례대로되리니, 먼저는열매인그리스도요, 다음에는그가강림하실때에그리스도에게속한자요, 후에는마지막이니그가모든통치와모든권세와능력을멸하시고나라를아버지하나님꼐바칠때라.”  빌립보서 3장 20-21절에 의하면, “그러나우리의시민권은하늘에있는지라. 거기로부터구원하는예수그리스도를기다리노니, 그는만물을자기에게복종하게하실있는자의역사로우리의낮은몸을자기영광의몸의형체와같이변하게하시리라.”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 하실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부활하게 될 터인데, 그 때의 우리의 몸은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완전히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여서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되어져서 그 곳에서 영원토록 성 삼위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을 믿는다. 이렇게 온전한 몸으로 다시 부활할 것을 확신하는 성도라면 이 땅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영될까봐 걱정이나 하면서 신세 타령만 하고 부정적인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이 있다면, 주님의 부활처럼 우리도 주님의 재림의 때에 부활할 것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 우리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이 다시 온전한 몸으로 살려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담대하고도 늠늠하게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네번째로 부활절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복음을 믿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남은 여생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2-4절에 의하면, “너는말씀을전파하라. 때를얻든지얻든지항상힘쓰라. 범사에오래참음과가르침으로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이르리니사람이바른교훈을받지아니하며귀가가려워서자기의사욕을따를스승을많이두고, 귀를진리에서돌이켜허탄한이야기를따르리라.” 5-8절에서는 “그러나너는모든일에신중하여고난을받으며전도자의일을하며, 직무를다하라. 전제와같이내가벌써부어지고, 나의떠날기약이가까웠도다. 나는선한싸움을싸우고, 나의달려갈길을마치고, 믿음을지켰으니이제후로는나를위하여의의면류관이예비되었으므로…….” 사도 바울은 죽음이 임박한 상황 속에서도 디모데를 향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증거에 힘쓸 것을 명령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확신하는 성도로서 아직도 구원의 진리를 모르고 지내고 있는 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소망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부활절을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담대하고도 확신있게 살아 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며,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우리가 온전한 몸으로 다시 부활할 것을 믿고, 아직도 복음을 모르며 부활을 모르는 자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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