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요한복음 11장 25절과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주님이 마르다에게 질문하셨다. 여기에 대해서 마르다가 대답하기를 27절에서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내가 믿나이다”라고 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한 점은 바로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 것을 확신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땅에서 그우리 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이 불러가시면  이 땅에서의 삶을 정리하고서 저 천국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스스로 삶을 버리는 자살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행전 1:16절 이하에 보면,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사람은 본래 우리 가운데 참여하여 직무의 부분을 맡았던 자라.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다 터져 창자가 흘러나온지라.” 가룟 유다(Judas Iscariot)는 주님의 제자로 3년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다녔지마는 그는 결국 돈에 탐심이 생겨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주님을 은 30에 팔아 넘기게 되었고, 그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스스로 목매 달아 곤두박질하게 되어서 창자가 터져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말하자면 가룟 유다의 말로는 자살로 끝을 맺고 만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끔찍한 죽음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행위인 것이다.

인간을 창조한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결단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일는 하지 않을 것이다. 몇일 전에 전 서울시장이었던 박원순 시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지난 7월 10일자 한국경제 신문에 의하면, “지난 9일 공관을 나와 연락 두절됐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끝내 10일 오전 0시 경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북악산 일대를 수색해 숙정문 인근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박원순 시장은 극단적 선택을 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전하고 있다. 계속해서 그 신문에 의하면 “박원순 시장은 최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가 서울시장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인해 고소를 당한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의 삶을 괴로워하다가 숙정문 인근에서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을까? 한국경제 신문에 보면, “7월 9일 오후 5시 17분께  박원순 시장의 딸이 실종 신고를 했다. 박 시장의 딸은 4-5시간 전 박 시장이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며 신고했다”고 말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서장에 의하면, 먼저 “내 딸과 아들에게” 유언하면서, “유언장이라는 걸 받아 들면서 아빠가 벌이는 또 하나의 느닷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제대로 남길 재산 하나 없이 무슨 유언인가 하고 내 자신이 자괴감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유산은 커녕 생전에도 너희의 양육과 교육에서 남들만큼 못한 점에 오히려 용서를 구한다”고 적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딸과 아들에게 제대로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내 아내에게” 쓴 유언장에서는 “변호사 부인이면, 그래도 누구나 누렸을 일상의 행복이나 평온 대신 인권 변호사와 시민 운동가로서의 거친 삶을 옆에서 지켜 주느라 고되었을 당신에게 무슨 유언을 할 자격이 있겠소. 오히려 유언장이라기 보다는 내 참회문이라 해야 적당할 것이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아내에게도 그동안 제대로 못해 준 대 대하여 참회하는 마음으로 유언장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또 그는 유언하기를 “이미 안구와 장기를 생명나눔실천회에 기부했으니 그 분들에게 내 몸을 맡기도록 부탁하오. 그 다음 화장을 해서 시골 마을 내 부모님이 계신 산소 옆에 나를 뿌려 주기 바라오”라고 하면서, 자신의 시신에서 안구와 장기를 이미 기부하기로 한 것을 말하고, 자신의 시신은 화장을 해서 뿌려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는 맨 마지막으로  “모든 가족과 지인들에게” 유언을 하면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희생과 헌신에 대해 아무 것도 갚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이 아리기만 합니다. 변호사 동생 또는 오빠를 두었으니 뭔가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아픈 가슴만 남았습니다. 다음 세상에서 혹시 그럴 위치가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동생 또는 오빠가 되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에서는 ‘같은 가지에 태어나 가는 곳 모르겠소’라고 노래했지만, 우리는 다음 세상에서 다시 함께 ‘같은 가지’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끝으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세상에서 반가운 얼굴로 맞겠습니다”라고 유언을 끝맺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의 유언을 보면 박원순 씨가 불교의 윤회 사상을 믿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유언장에서 “다음 세상에서”라는 말을 몇번이나 언급한 것을 보면, 그가 불교 신자처럼 윤회사상을 믿고서 지금은 목숨을 끊고 죽으나 또 다시 다음 세상에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 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 세상이 있음을 말하지 않고, 인간의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그 영혼이 천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지옥으로 가든지 둘 중에 하나 밖에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죽어가면서도 그의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리고 모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긴 유언의 글을 남기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있다. 65세의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도 그의 죽음을 슬프게 애도하며 애석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목숨을 자기 자신이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악한 행위요, 하나님의 섭리를 불복종하는 무서운 죄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하여서 매우 힘들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마는, 그래서 이 미국의 경제 상황도 매우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다 할찌라도 결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는 생각조차도 하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그 누구의 생명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생명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땅의 모든 생명들마다 매우 고귀한 것이며, 매우 위대한 것이다. 누가복음 9:25절에 의하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목숨은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매우 소중한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생명, 이렇게 고귀한 우리의 목숨을 어찌 스스로 끊을 수가 있으리요. 앞으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같은 분들이 또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고통스럽다 할찌라도, 아무리 진퇴양난의 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찌라도 결단코 삶을 포기한다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고서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극복해 나가므로 기어코 승리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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